각성제 - 이문재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태풍 한가운데를 지나 남녘 상갓집 다녀오는 길 기억력이 상했는가 자꾸 눈 들어 뒤를 돌아본다 덕수궁 어귀, 길바닥에 짓이겨진 나뭇잎들이 말간 냄새를 피운다 죽는 것들이 흩뿌리는 냄새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들의 향기 언제 가벼웁다는 것이 죄가 되지 않을까 덕수궁 잔등, 재개발 지구, 내부수리한 식당에서 가정식 백반을 혼자 먹는다 가정식? 비가정식 백반도 있을까, 식당에만 남아 있는 가정식으로 혼자 점심을 먹는 중년은 서글프다. 이 지방에서 혼자는 자주 죄악이다 깨끗한 옷, 아니 옷 깨끗하게 입고 수염도 좀 깎고 늘 오른쪽으로 기우는 고개도 좀 반듯하게 하고, 목 뒷덜미 자욱한 비듬도 털고, 이 가을의 변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 설익은 중년이 꿈꾸었던 것은 별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