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죽음에 대하여 - 윤향기
알고 있잖은가!
인생 오십에 죽으면 요절이라 하지 않는 것
내 나이 이미 오십이 꽉 찼으니
새삼 죽고 사는 데 대한 미련 있음이 아니라
서리 내린 논둑에 상처도 없이 쓰러져 있는 고양이
원래 이놈이 집 있는 것도 아니고
평소 고양이를 그리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나와 애틋한 사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나
어느날 불쑥 내 인생으로 들어온
고양이의 버려진 맨발이 안쓰러워
볏짚으로 그 죽음 덮어주었네
그래!
우리라고 저놈같이 되지 말란 법 있겠나
후생(後生)에 저놈은 인간으로 태어날 수도 있을 테니
저놈 걱정보단
내 후생이 더 두려워졌네
*시집, 피어라 플라멩코, 시평사
닿다, 여행 - 윤향기
세계지도가
제 생을 들고 나에게로 왔다
나는 조급히 내 생을 깨워 그의 몸에 닿았다
가끔씩 서툴렀던 한 부끄러움의 힘과
타인을 너무 깊이 사랑한 한 슬픔의 힘으로
# 내생도 후생도 윤회도 믿지 않지만 운명이라는 건 믿는다. 죽을 위기도 있었고 죽을 기회도 있었지만 내가 살아 있는 것은 이 모진 운명 때문이다.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도록 영혼의 무게를 줄이는 것, 행여 죽더라도 다음 생은 절대 오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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