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꽃나무 아래가 무덤 속 같다 - 이운진

꽃나무 아래가 무덤 속 같다 - 이운진 봄볕 앞에 망설인다 목련과 산수유 바람이 잠시 쪽잠에 빠져들면 눈빛 걸어둘 곳이 없다 놀이터의 아이들은 종일 두꺼비 집을 지어 꽃잎을 숨기고 발 디디는 곳마다 후두둑 소름이 떨어진다 온몸에 열꽃을 피우며 등이 아파오고 어김없이 꽃잎 몇 장 또 부풀어 오른다 그 순간 하늘이 캄캄해진다 무성한 꽃의 안도 이러할까 헤아려 보아도 일찍 시든 꽃잎은 옛 기억이 없고 뜨거운 뼛가루만 부서진다 희고 붉은 꽃잎들 봄볕을 탓하지만 한 장도 남김없이 다 피어야 끝나는 봄날, 마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꽃나무 아래가 무덤 속 같다 *시집, 모든 기억은 종이처럼 얇아졌다,문학의전당 사진기가 없던 일요일 오후 - 이운진 1 일요일 오후 수목원에는 꽃보다 사진기가 더 많다 패랭이 꽃 앞에서, ..

한줄 詩 2018.04.21

엉겅퀴꽃 - 김이하

엉겅퀴꽃 - 김이하 낡은 차양이 떨어져 나간 서까래 그 사이 화안히 열린 하늘, 하늘 눈부신 한낮 햇볕의 숨결 씩씩하게 내 뼈 속의 진을 내어 게거품을 뿜는 이 여름, 징그런 사금파리 햇살에 가위눌려 꿈에서 깨었네 짓이 난 나비 따라간 바람 한 줄기 우쭐우쭐 날아올라 끝간 데 없이 다가갈 수 없는 그녀의 뒷모습을 덮고 가라앉는 흙먼지 속에서 마지막 웃음 보았네, 자줏빛 입술로 돌아보는 엉겅퀴꽃 오래 미워할 것도 없는 그녀, 나 그녀를 위하여 삶을 비굴하게 살아온 것도 아니지만 어쩌면 뜨겁게 산 적도 없던 부끄러움이 얼굴 위로 훅 끼치는 사내의 삶이 한없이 힘들고 쓸쓸한 여름 떠나 버렸네, 내 가슴의 그녀 그 여름 차양 없는 처마 밑으로 하얗게 소금 입술이 타듯 징그런 기억들 쩡, 뼈가 울리도록 가슴 뒤척..

한줄 詩 2018.04.21

반만의 사랑을 위하여 - 박남원

반만의 사랑을 위하여 - 박남원 준비 없는 만남 속에서 그대의 반을 알았고 이별의 긴 불면 속에서 나머지 반을 마저 알았네. 삶이 어차피 운명이라면 잃어버림으로 오히려 찾음이 되는 이것이 내 삶의 슬픈 운명이라면 만남 속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사랑하지 못한 후회와 번민의 속아픔이거나 이별 이후에야 참답게 찾은 그대에의 사랑이 이제는 이미 아득한 거리에서 가물거림을 백 번을 나는 다시 깨달아야 했던 것이지만 조금 더 참고 수고하고 기다리는 미덕이 있어야 했던 것이겠지만 그러나 어차피 반은 내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내 운명의 몫인 반만의 사랑이 차라리 온전한 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시집, 사랑의 강, 살림터 사랑한다는 것 - 박남원 세상에서 한 사람을 만나 사랑한다는 것은 가슴으로 세상을 연습하는..

한줄 詩 2018.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