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길 - 조항록 익숙한 길 - 조항록 후드득 벚꽃이 지는 아침 우르르 소나기 쏟아지는 저녁 하얗게 눈이 젖고 마음은 잠기네 환장할 일이 아직 그렇게 남아 있을까 현실을 오독하며 추억을 왜곡하며 내부순환만 거듭하는 묽은 피의 내력 어처구니없는 사랑이라도 기다리고 있을까 저 길 모퉁이를 몇 번 .. 한줄 詩 2018.04.19
길을 걷다가 - 박석준 길을 걷다가 - 박석준 길을 걷다가 혼자일 때 단어들이 구르고 닳아져 버린 일상의 끝 저물 듯한 인생이 네 앞에 형상을 드리울 때 가거라 거리 색색의 사람들로 물들었을 때 사람 무섭지 않으니 어서 가거라 밤 깊어서 그림자로 눕고 싶은 방이 그리워지도록 사람 형상에 사무치면 가가라 어서 그 방에 가서 숨죽이고 귀 세우면서 잠들 때까지 사람 자취를 새겨 보아라 말 못할 그리움이 뇌리를 기웃거리고 말하고 싶은 말들만이 가슴을 파고들면 세월에 바람을 떨구는 밤은 사람 없는 고독에 시달리다가 홀로 죄를 짓더라도 다시 날이 새고 숨쉴 수만 있다면 세월은 그저 가는 것 사람이란 거리에 흔하게 구르면서 네 아픔 밀어낼 것이니 사람 없는 어두운 거리는 쫓기듯이 바쁘게 걸어 사람 그리워지는 네 고독의 방으로 어서 가거라 .. 한줄 詩 2018.04.19
잊읍시다 - 고철 잊읍시다 - 고철 무서리 떠난 다음에야 봄의 꽃들은 노을을 취한다 봄은 먼저 보는 자가 주인이다 적어도 이 뻘에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저잣거리는 흙비린내가 너무 많은지 오구려 나앉아 구토를 참아 보지만 저 이의 흰 머리엔 쇳조각 하나 꽂아 있질 않다 귀를 찢어서 팔아볼까 눈을 찢.. 한줄 詩 2018.04.19
지렁이만큼이나 외롭고 쓸쓸하게 - 최서림 지렁이만큼이나 외롭고 쓸쓸하게 - 최서림 마당 저쪽 채송화가 먼지를 두껍게 뒤집어쓰고 있다 여우비에 반쯤 씻기다 말고 얼룩얼룩하다 한때 빨치산에 부역했다 머슴, 소작농, 칼갈이, 노가다로 전전하다 노점상으로 생을 마감했다 조문객도 드문드문한데 하나뿐인 플라스틱 화환이 가.. 한줄 詩 2018.04.19
이유는 없다 - 임동확 이유는 없다 - 임동확 이유는 없다, 봄날엔 심지어 죽음마저도 꽃이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나는 급박한 사태가 꽝꽝 얼어붙은 연인들의 가슴을 위한 거라면 아무렴, 봄날엔 굳이 희망만이 아니라 왠지 모를 지독한 쓸쓸함마저 축복이다 그래, 이유는 없다 정령 떠나보내고서야 너의 흔.. 한줄 詩 2018.04.19
광기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광기 - 하린 광기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광기 - 하린 출처가 비슷한 광기들이 모여 하나의 혁명을 구성하려 할 때 가장 유순한 짐승 하나가 만들어진다 광기는 혼자일 때만 완전해지므로 허름한 주점을 혼자 가는 일 따윈 피해야 한다 미치지 않기 위해 괜찮다는 포즈를 취하며 병을 깨고 달려드는 초.. 한줄 詩 2018.04.18
참 다른 일 - 김병호 참 다른 일 - 김병호 보송보송 잎눈 매단 목련 아래에서 한나절 서성거려 본 당신이라면 알 수 있을까 가지마다 낱낱의 불꽃을 매달고 서 있는 유순한 아픔과 적막하게 벗은 잔등에 혀를 대는 봄바람의 뜨거움을 찢겨진 마지막 페이지처럼 멈춘 오후 네 시 명치에 닿거나 바닥에 끌.. 한줄 詩 2018.04.18
이단자 봄꽃에게 - 이재섭 이단자 봄꽃에게 - 이재섭 지난 가을, 너의 오그라진 뿌리를 보았는데 그리 꺼진 몸을 가지고 기어코 한겨울을 났는가 보다. 하루하루 삭아가는 그 몸뚱이로도 너는 감히 딴 생각을 하며 명주실 같이 질긴 생명을 자근자근 짜고 있었나보다. 어둡고 황량한 땅에 떨어져 몸을 더럽히고 밟.. 한줄 詩 2018.04.18
양귀비 수난 시대 - 홍순영 양귀비 수난 시대 - 홍순영 -아따, 꽃 좀 보려고 몇 포기 심었는디 그것도 죄가 된당가 고 하늘하늘한 낯짝이 울 마누라 처녀 적 속살 같아 좀 두고 볼라갔더니 말쎄 제대로 꽃 한 번 못 보고 꺾인 마음에 먹장 낀다 천지사방 꽃 축제 지천인데 텃밭 양귀비는 쨍한 삽날에 짓이겨져 줄기고, .. 한줄 詩 2018.04.18
꽃의 흐느낌 - 김충규 꽃의 흐느낌 - 김충규 꽃의 흐느낌이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밤, 그 흐느낌은 화려한 향기를 며칠 동안 내뿜은 뒤에 오는 격렬한 후유증인 것 꽃은 지금 제 종말을 나에게 타전하고 있는 것 내일 아침 눈 뜨면 가장 먼저 죽은 꽃에게 문상을 가리라 검은 하늘이 제 욱신거리는 통증 자리에 .. 한줄 詩 2018.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