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엉겅퀴꽃 - 김이하

마루안 2018. 4. 21. 22:04

 

 

엉겅퀴꽃 - 김이하

 

 

낡은 차양이 떨어져 나간 서까래

그 사이 화안히 열린 하늘, 하늘 눈부신

한낮 햇볕의 숨결 씩씩하게

내 뼈 속의 진을 내어 게거품을 뿜는

이 여름, 징그런 사금파리 햇살에

가위눌려 꿈에서 깨었네

짓이 난 나비 따라간 바람 한 줄기

우쭐우쭐 날아올라 끝간 데 없이

다가갈 수 없는 그녀의 뒷모습을 덮고

가라앉는 흙먼지 속에서 마지막 웃음

보았네, 자줏빛 입술로 돌아보는 엉겅퀴꽃

오래 미워할 것도 없는 그녀, 나 그녀를 위하여

삶을 비굴하게 살아온 것도 아니지만

어쩌면 뜨겁게 산 적도 없던

부끄러움이 얼굴 위로 훅 끼치는

사내의 삶이 한없이 힘들고 쓸쓸한 여름

떠나 버렸네, 내 가슴의 그녀

그 여름 차양 없는 처마 밑으로

하얗게 소금 입술이 타듯 징그런 기억들

쩡, 뼈가 울리도록 가슴 뒤척이면

금간 논바닥에 황금의 빛살로 내리꽂히는

불꽃, 몹쓸 사랑의 꿈 싸질러 버리네

아찔한 가슴 엉겅퀴꽃만 피었네

 

 

*시집, 내 가슴에서 날아간 UFO, 청파사

 

 

 

 

 

 

飛犬 - 김이하

 

 

나의 비상은 무겁다

철새들의 모음으로 끼룩거리다가

앵글이 꽉 차게 날아오르려 했지만 이 비상은

낮은 곳을 항하여 떨어지는

포물선 끝보다 위태롭다

 

어느 한순간 짜릿하게

살아온 삶보다 무겁고 큰 행복의 절정을

비행하고 싶었던 간절함으로

나는 꽁지를 낮추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보지만

한 철 헤맨 철새들의 빈 하늘로

끼룩거리며 날아간 어느 한 점에서

절망과 마주친 광활한 여백만이 덩그마니 남아

 

날개를 편 나의 꿈을 여지없이 흔들어 버린

저 비웃음 같은 푸른 하늘

바닥에 웅크린 다리뼈 끝으로

시린 바람이 몰아쳐 올 때

나는 재빨리 웅크린 몸을 솟구치며

다시 한번 끼룩거려 보지만

천수만의 장관과도 같은 새떼의 이륙은 없고

 

어쩌면 총알이 되고 싶었던 머리

그 슬픔을 무장해제 당한 모골이

허공중에 아무도 날 수 없었던 한 대역을

가득 채우고 떨어진다, 나의 비상은

여지없이 곤두박질쳐 버린 포물선 끝에서

끝났다, 새떼의 비상이 아름다운

정지 화면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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