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나는 더 아파야 한다 - 정세훈

마루안 2018. 5. 19. 23:05



나는 더 아파야 한다 - 정세훈



내가 정말 인간이라면
나는 더 아파야 한다


단순히 먹고 싸는
동물이 아니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인간이라면


나는 더 아파야 한다
노동법 조항 하나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는
영세 소규모 공장 노동자
설움 앞에서


나는 더 아파야 한다
똑같은 노동을 팔지만
정규직 반값 노임을 받는
파견 비정규직
비애 앞에서


나는 더 아파야 한다
언제 복직되어
노동판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 없는 해고의
절망 앞에서


착취 자본, 복수 어용노조
비호하는
정권과 공권력이
노동의 목숨을


고공 크레인
고압 송전 철탑
굴다리난간, 성당 종탑
허동에 매달아 놓은
천막 앞에서


춥고 배고프고 누울 곳 없는
저 아슬아슬한
생 앞에서


투신하고 목을 매는
막막한
주검 앞에서


세상만사 다 그런 거라고
그저 그런 거라고
이런 모습도 있고
저런 꼴도 있는 법이라고


그러하니
세상 일 참견하지 말고
아픈 몸 건강이나 잘 챙기라고
던지는
충고 앞에서
 

나는 더 아파야 한다
그 아픔 속으로
투신하여
내 목을 매어야 한다



*정세훈 시집, 몸의 중심, 삷창








몸의 중심 - 정세훈



몸의 중심으로
마음이 간다
아프지 말라고
어루만진다


몸의 중심은
생각하는 뇌가 아니다
숨 쉬는 폐가 아니다
피 끓는 심장이 아니다


아픈 곳!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처난 곳


그곳으로
온몸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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