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늙은 소나무 - 김영언

늙은 소나무 - 김영언 설 쇠고 다들 떠난 자리 뒷산 산소 옆 늙은 소나무 한 그루 보고 싶었던 자식들 밀물처럼 몰려왔다 썰물처럼 떠나버린 재 너머를 향해 기울어진 채 그리움을 발돋움하고서 세월아, 세월아, 돌아보지 않는 바람만 행여나, 쏴쏴 흔들고 있었다 언뜻 의무처럼 왔던 이들 어둠 밖으로 의무처럼 떠나보낸 뒤 고단한 그림자만이 홀로 남아 말없이 눈물도 없이 불빛 힘없이 사그라지던 대문간에 서 있었다 *시집, 집 없는 시대의 자화상, 작은숲출판사 오두막에서 연기를 피우다 - 김영언 세상 한 귀퉁이 액자처럼 걸려 있는 외딴 오두막에 들어앉아 풍경 밖으로 하릴없이 닿을 곳 없는 음성부호 같은 연기를 피워 올린다 잡다한 생각들을 똑똑 꺾어 불더미 속에 던져 넣으며 주저 없이 하늘을 치받던 키 높은 낙엽송들..

한줄 詩 2019.12.19

둥글다는 거 - 이명우

둥글다는 거 - 이명우 바람과 햇빛과 달빛과 공기들이 유목민처럼 모여 살다 떠난 곳 그는 보름 동안 오지 않았다 외진 농장에서 고요가 능선으로 울타리를 치고 있을 때 개밥그릇에 담긴 햇빛을 그림자가 먹고 있을 때 말뚝에 박힌 개의 목줄은 끝없이 태엽을 감고 있었다 산이 컹컹 울었고 달빛이 개밥그릇에 담겼다 구름은 둥근달을 갈아먹었고 울음소리에 달빛이 어두워져 갔다 개의 혓바닥은 죽음을 닦았고 산도 그림자를 마주 잡고 어둠을 넘고 넘었다 허기가 위장을 간지럽게 긁어대면 혓바닥에 걸린 기다림은 늘어지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긴 기다림의 혓바닥을 붙잡지 않았다 목줄에 걸린 햇빛이 그 끈을 놓지 않고 그 풍경을 가득 채웠다 둥글게 돌아다니는 시간은 목줄을 잡아당겼고 바람 앞에 무릎이 풀리고 있었다 죽음이 먼지처럼..

한줄 詩 2019.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