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범람 - 안태현
-사랑의 물질성에 관한 태도.4
엎드려서 문득 십 년 후가 보일 때가 있다
저절로 고개가 끄덕이는 그때
수척해진 빛을 쬐고 있으면
미완의 새처럼 잊어버린 날갯짓이 생각나기도 할
그때
넘쳐나는 것이 있긴 있을까
혼자 있는 시간이면
물병에 물을 담는 일이
당신과 나의 내세를 채우는 일인 양 흐뭇해지기도 하지만
가끔은 넘쳐흐르기도 했다
바스러지는 몸에서 악기를 꺼내 조심스럽게 닦는다
그것은 눈부신 음색을 찾아
미래의 시간을 짚어보는 일
사랑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결이라 쓰고 싶지만
일천 이십여 개의 탄흔 같은
비무장의 몸에서
흘러나온 흉몽들이 더 많았으리라
타인들은 쏟아지고
세상은 감염병을 앓는 듯이 모든 것을 쓸고 가며
폐허를 닮아간다
내가 닿았던 당신의 한숨과 노래들이
끓어 넘칠 때
그리하여 생의 한구석이 빛나기도 할 때
*시집, 저녁 무렵에 모자 달래기, 시로여는세상
변곡점 - 안태현
-사랑의 물질성에 관한 태도.5
내 사랑도
당신 몸의 화인(火印)도 늘 제자리
애초에 나는 불완전한 생을 받아든 사람이므로
한결같은 마음을 가질 수 없으나
우리의 삶은 항상 커브
낮 동안 끌고 다닌 몸으로 뼈가 가벼운 새처럼 하늘의 가장자리를 말갛게 닦으면
뜨거운 생살이 만져진다
미안하다
지난봄의 소소한 약속들을 지키지 못했다 내 귀에서 반성의 목소리 한번 들은 적 없으니
이게 무슨 현상일까
먼 곳으로부터 돌아온 나는 아직도 무관심의 요철 속에 갇혀 있는 것 같다
당신의 불평처럼 듣는 빗방울
펄펄 끓어도 병이 되지 못하고 오래 버텼으나 단 한 번의 치유도 되지 못한 숱한 밤을 앞에 두고 있으면
사람의 일이란 미궁
때를 기다리고 때를 알아야 하는 것
차례차례 열리는 문으로부터 삶은 여전히 덜컹거리고 기억마저 흐려져서
지울 수 없는 후회로 남는다
아름다운 곡선을 따라 아침이 오고 석양이 눈부시게 비출 때 구름의 행간에서 읽는
당신과 나의 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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