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3890

달력을 얻으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 박대성

달력을 얻으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 박대성 연말이면 아버지는 은행, 약국, 백화점을 돌며 달력을 얻으러 다녔다 마치 자신이 주문한 물건을 찾으러 다니는 사람처럼 의기양양 때 묻지 않은 시간을 찾으러 다녔다 하지만 아버지가 얻고픈 시간들은 쇼윈도에서 반짝일 뿐 얻어 올 수 없었다 단골이 아니라는 까닭이었다 아버지가 얻어 오는 것은 참이슬, 처음처럼 같은 술 회사나 잡화점 달력들이었다 때문이었는지 집은 늘 시끌벅적 시장통 같았다 달력들은 사시사철 꽃바람 비키니를 입고 가족들을 응원하였다 덕분에 식구들은 무럭무럭 가족이 되었다 아버지가 얻어온 달력들이 벽에 걸리면 집은 방금 도배를 마친 것처럼 화사해지고 식구들의 눈동자는 네온사인처럼 반짝였다 찬바람이 불면 아버지는 달력을 얻으러 다녔다 시집/ 아버지, 액..

한줄 詩 2019.12.15

햇빛을 찾는 사람 - 이성배

햇빛을 찾는 사람 - 이성배 돈이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연탄을 빌려 가듯 그에게 가장 양지바른 곳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수맥을 찾듯 햇빛을 찾는데 용한 재주가 있었다. 부족한 것은 서로 빌려 쓰고 매일 쓸고 닦는 살림살이처럼 삶도 가꾸는 만큼 빛난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편리해졌고 사람들이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을 때는 이미 불빛이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그가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관심을 갖는 사람도 없었다. 시력이 낮아진 사람들은 편리하게 안경을 썼고 모든 인생은 스스로 빛나는 것이라고 믿었다. 갑작스런 정전에 나무들은 더 깊게 어두워졌고 정전이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불안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이 거금을 들여 비밀리에 그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그를 찾았다는 소..

한줄 詩 2019.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