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줄 映 64

패터슨 - 짐 자무쉬

패터슨은 버스운전사다. 미국의 작은 도시 패터슨에서 시내버스를 운전한다. 택시운전사가 승객이 원하는 곳을 가야한다면 버스운전사는 정해진 노선을 다람쥐가 쳇바퀴 돌리듯 정해진 길을 반복해서 운행한다. 어쩌면 우리 일생도 버스노선처럼 반복의 일상이다. 패터슨은 주인공의 이름이자 도시 이름이기도 하다. 그리고 패터슨은 시인이다. 영화를 보면 도시 자체가 참 시적이다. 삐까뻔적 화려한 도시가 아닌 세월의 흔적이 묻고 낡은 건물 주변 환경이 시가 절로 써질 환경이다. 매일 이른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버스회사로 출근해 정해진 노선을 돌고 나면 퇴근이다. 아내와 저녁을 먹고 개구장이 강아지 불독과 산책을 하고 단골 술집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면 하루 일과의 마감이다. 패터슨이 지루한 ..

세줄 映 2017.12.25

아이 캔 스피크 - 김현석

서울 변두리 허름한 전통시장에서 의류 수선점을 하는 옥분 할머니와 그 지역 구청에서 근무하는 9급 공무원 민재는 사사건건 부딪힌다.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면서 각종 민원을 넣는 할머니의 극성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가 민재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매달린다. 둘 사이의 밀당 끝에 영어를 배우는 할머니에게는 대체 그 나이에 영어를 배워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뒤늦게 할머니의 비밀이 밝혀지고 그녀에게는 평생 가슴에 담고 살았던 사연이 드러난다. 민재에게도 부모 없이 성장한 동생을 보살펴야 하는 사연이 있다. 어느 누군들 사연 없는 인생이 있을까. 그러나 옥분 할머니의 상처는 너무 깊다. 그 상처는 옥분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무덤에서도 치유하지 못한다. 그 상처가 영어를 배워 치유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

세줄 映 2017.12.09

공범자들 - 최승호

지금은 완전히 망가진 MBC지만 예전에는 무조건 MBC만 봤다. 요즘엔 주로 JTBC를 보는데 종편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가장 신뢰하는 방송사다. 10년 전 엠비씨가 요즘의 제이티비씨 역할을 했다. 황우석 사태를 보도했던 시절이 엠비씨 황금기였다. 광우병 보도 이후 조금씩 망기지기 시작한 엠비씨가 지금은 완전히 죽은 방송을 한다. 그 속에 방송을 장악하려는 정권의 음모가 들어가 있다. 그 사람이 바로 이명박 정권이다. 이 영화는 어떻게 방송이 정권에 장악되어 망가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영화 참 찍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그래도 이런 사람이 있어서 이 사회가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권은 최고권력자 한 사람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는다. 그 밑에 아부하고 무조건 충성하는 개들..

세줄 映 2017.12.08

택시 운전사 - 장훈

1980년 광주항쟁을 배경으로 사건이 있는 곳은 어디든 가는 독일인 기자 와 손님이 가자면 어디든 가는 택시운전사 의 이야기다. 서울에서 딸을 홀로 키우며 가난하지만 소박하게 사는 택시운전사 만섭이 어느 날 광주로 가는 장거리 손님을 태운다. 태워다 주기만 하면 큰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광주는 이미 군대가 주둔해 있다. 시위대를 무차별 진압하고 민간인까지 가리지 않고 죽이는 실태를 보고 도망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외국인 기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취재를 고집한다. 의협심이고 뭐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딸을 생각하며 광주를 빠져나오던 만섭은 다시 광주로 차를 돌린다. 취재를 돕고 광주 사람들의 소박한 인심을 경험한 만섭은 혼란의 도시 광주에서 잠시 사람 냄새를 맡는다. 만섭은 무사히 외국인 ..

세줄 映 2017.11.30

시인의 사랑 - 김양희

제주에서 나고 자란 마흔 살의 시인이 있다. 특별한 시인 기질도 없고 변변한 직장도 없지만 억척스런 마누라 덕에 생활비 걱정 없이 산다. 그리고 마누라만이 자기를 세상에서 제일 잘난 남자로 알고 시인을 극진히 내조한다. 남편은 생활력이 없는 데다 무정자증에다 섹스에도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불임시술 병원이라면 질색팔색하는 남편을 데리고 병원을 들락거리며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아내다. 백수 남편이지만 아내는 시인이 옆에 있어만 줘도 마냥 행복하다. 시인은 아내가 너무 자기에게 집착하는 것이 되레 부담이다. 시도 잘 써지지 않는다. 동인끼리 만난 시 품평회에서도 그의 시는 혹평을 받기 일쑤다. 풀 죽은 남편의 기를 살리기 위한 아내의 빽으로 초등학교에 일일 선생으로 시인이 초대 되..

세줄 映 2017.11.30

폭력의 씨앗 - 임태규

군대 일병인 주용은 후임으로 들어온 고문관 이병 필립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모처럼 외박을 나가는 날 누군가의 소원수리 때문에 폭력 사건이 일어난다. 고참의 폭력으로 이빨이 부러진 후임병을 데리고 치과의사인 매형에게 간다. 처남의 방문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매형과 전화를 받지 않는 누나의 행적이 수상하다. 전에도 누나에게 폭력을 쓰던 매형의 버릇이 아직도 계속이다. 주용은 맞고 사는 누나와 답답한 후임병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결국 주용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폭력을 쓰게 되면서 다시 부대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은 꼬이기만 한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폭력성을 깔고 있는 인간의 본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영화다. 좋은 영화는 보고 나서도 긴 여운과 함께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세줄 映 2017.11.17

불온한 당신 - 이영

평생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이묵 이라는 여자의 이야기다. 그는 여자를 사랑한 여자였다. 속칭 바지씨다. 요즘이야 여성 동성애자를 레즈비언이라 말하지만 1945년 생으로 70대인 이묵에게 당시 그런 단어가 없었고 바지씨였다. 그는 여자라면 당연히 스물을 넘기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삶을 살아야 했지만 그런 삶을 거부하고 세상을 떠돌았다. 서울에서는 김승우로 고향에서는 이묵으로 살았다. 여자를 사랑했기에 남자 이름이다. 세상은 바지씨인 그를 불온시 했다. 영화는 이묵의 말년을 찾아 감독이 함께 생활하며 지난 날을 회고하는 장면과 성소수자가 겪는 현실을 교차하면서 보여준다. 일본의 레즈비언 커플의 일상도 보여주고 퀴어 퍼레이드를 혐오하고 방해하는 보수 종교단체의 현실도 그대로 보여준다. 이묵..

세줄 映 2017.11.12

노무현입니다 - 이창재

정치인 노무현의 인간적인 모습을 날것 그대로 담고 있는 영화다. 영화는 종로 지역구 국회의원을 버리고 지역 구도를 깨겠다는 신념으로 부산으로 내려가는 데부터 시작한다. 종로에서 다시 출마하면 당선은 따논 당상인데 꿀밭을 버리고 가시밭길로 간 것이다. 이때부터 바보 노무현이라는 호칭이 시작된다. 그의 뚝심과 진정성을 사랑하는 사람도 생긴다. 떡고물 바라고 돕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에서 그를 지지하는 모임 노사모의 시작이다. 2002년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 시작된다. 영화는 시종 노무현 정치 활동 당시의 오래된 자료 영상과 교차해서 여러 사람의 회고담 인터뷰가 나온다. 유시민, 강원국, 이광재, 조기숙, 최영 등 노대통령 측근이었던 사람들이다. 특히 노무현 변호사 시절부터 감시를 했던 국정원 요원..

세줄 映 2017.07.02

다른 길이 있다 - 조창호

죽고 싶은 남녀가 있다. 이벤트 회사에서 도우미로 알바를 하는 여자는 집에 오면 지옥이다. 전신 불수로 종일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의 시중을 들어야 하고 밤중에는 성욕에 굶주린 아버지의 시달림까지 받는다. 이제 희망이 없는 삶에 지쳤다. 남자는 어릴 때 어머니의 죽음 때문에 가슴에 깊은 상처가 있다. 힘들게 살아 남아 경찰이 되었으나 천성이 여려 적응이 힘들다. 음주 운전에 걸린 트럭운전사가 면허가 정지되면 생계가 막막하다고 하소연을 한다. 그냥 보내준 트럭이 사고를 냈고 그 파장이 느슨한 단속을 한 자신에게 미친다. 우울증까지 겹쳐 남자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다. 얼굴도 모르는 남녀가 인터넷 자살 사이트에서 채팅을 한다. 어떻게 죽을까요? 서로 의견을 맞춘 남녀가 함께 죽기로 약속을 잡는다. 어디로 죽을까..

세줄 映 2017.06.03

나, 다니엘 블레이크 - 켄 로치

어김 없이 켄 로치 감독은 이 영화로 내 마음을 사고 잡는다. 나는 이 감독의 영화를 빼놓지 않고 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내가 당하는 것처럼 분통을 터뜨렸다. 비록 영국을 배경으로 했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열통과 탄식과 한숨이 교차했다. 엔딩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손바닥까지 전해오는 긴 감동과 여운이 지속된다. 40년 동안 목수로 일해온 다니엘은 심장이 좋지 않다는 의사 경고로 일을 그만 둔다. 복지국가 영국에서는 병에 걸리면 질병수당이라는 것을 받는다. 이곳저곳을 찾아 어렵게 수당 신청을 하지만 관에서는 일을 못할 정도로 심하지 않다는 이유로 수당 지급을 거부한다. 의사는 죽을 수도 있으니 일을 하지 말라 하고 관에서는 일을 못할 정도의 병인지를 증명하라니 한번쯤 기절하고 싶지만 방법이 없..

세줄 映 2017.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