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이묵 이라는 여자의 이야기다. 그는 여자를 사랑한 여자였다. 속칭 바지씨다. 요즘이야 여성 동성애자를 레즈비언이라 말하지만 1945년 생으로 70대인 이묵에게 당시 그런 단어가 없었고 바지씨였다.
그는 여자라면 당연히 스물을 넘기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삶을 살아야 했지만 그런 삶을 거부하고 세상을 떠돌았다. 서울에서는 김승우로 고향에서는 이묵으로 살았다. 여자를 사랑했기에 남자 이름이다. 세상은 바지씨인 그를 불온시 했다.
영화는 이묵의 말년을 찾아 감독이 함께 생활하며 지난 날을 회고하는 장면과 성소수자가 겪는 현실을 교차하면서 보여준다. 일본의 레즈비언 커플의 일상도 보여주고 퀴어 퍼레이드를 혐오하고 방해하는 보수 종교단체의 현실도 그대로 보여준다.
이묵은 정체성을 숨기고 평범한 삶을 사는 대신 자신을 드러내고 성소수자로 평생을 살았다. 영화는 그의 일생을 어둡거나 슬픔으로 그리지 않고 그가 살아온 고난의 세월을 잔잔히 보여줄 뿐이다. 이 영화를 만든 이영 감독도 동성애자다. 영화를 찍기 위해 함께 생활하면서 선배의 신산한 삶을 잘 담아냈다.
불편하지만 정체성이 다른 사람도 존중 받아야 함을 깨우쳐 주는 영화다. 불온한 사람과 불편한 사람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성 정체성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이성애자들의 시선은 불편하다 못해 금지하길 바란다. 불온한 사람이 존중 받고 살기엔 아직도 갈 길이 먼 불편한 세상이다. 이묵 선생은 지난 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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