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줄 映 64

정말 먼 곳 - 박근영

코로나 시대에 모든 일상이 엉망이다. 아무리 방역수칙을 잘 지킨다고 해도 영화관 나들이마저 눈치가 보인다. 철 없이 이 시국에 무슨 극장이냐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을 피해 가능한 이른 시간에 갔다. 조조는 할인도 되고 관객도 많지 않아 일석이조다. 진우(강길우)는 강원도 화천에 있는 목장에서 일한다. 중만(기주봉)이 운영하는 소와 양을 기르는 목장이다. 진우는 목장 주인은 물론 그 동네 주민들에게 성실한 젊은이로 인정을 받는다. 다섯 살인 딸 하나를 데리고 살지만 사실은 친딸이 아니라 조카다. 어느 날 진우의 친구 현민(홍경)이 목장으로 찾아온다. 현민은 길우의 동성 애인으로 시인이다. 둘은 화가와 시인으로 만나 연인이 되었다. 오랜 만에 만나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 현민은 화천의 성당에서 운영하..

세줄 映 2021.03.30

세자매 - 이승원

콩가루 집안의 가족 이야기이자 너무나 성격이 다른 세 자매의 이야기다. 한 사람은 바보처럼 너무 착하고, 한 사람은 영특하고 이재에 밝으나 지나치게 가식적이고, 한 사람은 내키는 대로 사는 자유주의자이면서 자기 주장이 뚜렷하다. 어느 가정이나 숨기고 싶은 사연 몇 가지는 갖고 있다. 이 가족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딱 우리집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명절이든 제사 때든 만났다 하면 마지막엔 싸움으로 끝난다. 그 갈등의 중심은 늘 나였지만 풀리기보다 꼬이는 일이 더 많았다. 정상적인 가족이 없다. 한 사람은 너무 소심해 바보 같고, 한 사람은 너무 가식적이어서 여우 같고, 한 사람은 너무 철이 없어 백치 같다. 막판에 밝혀지지만 이 세 자매의 원천적 꼬임은 아버지에게서 출발했다. 하나 있는 남동생까지 찌질함이..

세줄 映 2021.02.27

찬실이는 복도 많지 - 김초희

제목부터 인상적이라 금방 머리에 쏙 박힌다. 상업성은 다소 없어 보이나 작품성이 금방 느껴지는 제목이다. 진짜 작품성은 있다. 김초희 감독의 장편 데뷰작이다. 홍상수 감독 밑에서 프로듀서로 오랜 기간 일했다고 한다. 이 영화도 영화인 이야기다. 약간의 자전적 경험도 들어가 있으리라. 영화 속 인물 찬실이는 영화에 미쳐 오직 영화판에서 청춘을 다 보낸 여성이다. 결혼도 못하고 새끼도 없고 그렇다고 벌어 논 돈도 없다. 그런 걸 깨닫지도 못하고 영화에 몰두하며 살았다. 큰 기대를 갖고 새로운 영화 작업도 시작한다. 고사까지 잘 지낸 날 축하 파티에서 그만 감독이 돌연사를 한다. 영화 제작은 무산이 되고 찬실이도 졸지에 그 영화판에서 밀려난다. 산동네로 이사를 간 찬실이는 주인집 할머니의 배려로 잘 적응을 한..

세줄 映 2021.01.11

욕창 - 심혜정

아내가 뇌졸중으로 모든 일상을 남에게 의존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부부는 자식이 셋이나 각자 살기 바쁘다. 부모도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다. 십시일반으로 엄마를 돌볼 도우미를 구한다. 싸게 구하려니 불법체류자인 조선족이다. 도우미는 종일 상주하면서 아내의 수발을 들고 남편의 식사까지 챙긴다. 자식들은 갈수록 엄마 대신 안주인 노릇을 하려 드는 도우미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종일 상주하면서 이 정도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냥 넘긴다. 그래도 싹싹하고 일을 잘 한다. 그동안 어머니 수발에 지쳐 못 하겠다는 그만 둔 도우미가 여럿이다. 엄마에게 영화 제목처럼 욕창이 생긴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장시간 한 자세로 누워 있으면 욕창이 생긴다. 엄마의 욕창으로 이 가정에 균열이 생긴다. 그..

세줄 映 2020.07.31

기도하는 남자 - 강동헌

"사는 게 너무 안 행복하지?" 목사의 아내가 말한다. 맞다. 사는 것이 누구에게나 행복한 건 아니다. 이 영화는 신앙심이 투철한 개척교회 목사 부부 이야기다. 부창부수라고 둘 다 성실하고 착하다. 모범 부부다. 하나님을 믿는 것만큼 서로를 사랑한다. 사랑의 바탕엔 믿음이 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사랑을 말하면서 오늘날 혐오를 조장하는 원산지가 교회다. 이 영화도 개신교를 개척하는 목사가 주인공이다. 목회 활동은 험난하다. 반지하 교회에 딸린 골방으로 숙식을 해결하며 교회 개쳑에 열중한다. 예배 시간이면 열 명도 안 되는 교인이 모이고 그것도 외국인 노동자이거나 곧 다른 곳으로 옮긴다. 요즘의 교회 사모님과는 달리 목사의 아내 또한 착하기 그지 없다. 비록 풍요롭지 않지만 유치원 다니는 두 딸을 사랑..

세줄 映 2020.05.27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 김용훈

호텔 사우나 남탕 옷장에서 거액이 든 가방이 발견된다. 이 돈을 발견한 사람은 사우나 탈의실에서 야근 근무를 하는 중년 남자다. 부모가 운영하던 횟집을 말아 먹고 아내와 맞벌이를 하며 재기를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들이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 뿐이라 남자는 사우나 직원으로 아내는 터미널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돈을 번다. 대학생인 딸은 학자금 대출을 받지 못해 휴학을 해야 하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까지 모셔야 한다. 출구가 보이지 않은 막막한 상황에서 난데없는 돈가방이라니,, 누가 두고 간 건지도 모르는 이 돈가방은 음침한 사연과 함께 얽히고 설킨 악연들로 연결 되어 있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다 돈이 필요하다. 사채를 빌려 썼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 때문에 전전긍긍이다. 사채 업자는 목숨을 위협하며..

세줄 映 2020.05.16

이장 - 정승오

제목만 보고는 동네 일을 보는 이장을 말하는 줄 알았다. 영화 제목은 무덤을 옮겨 다시 장례를 치르는 移葬을 말한다. 제목처럼 영화는 다섯 남매가 돌아가신 아버지 무덤을 옮기는 과정에서 가족의 갈등과 화해를 다루고 있다. 고향 땅에 묻혀 있는 아버지의 이장을 위해 다섯 남매가 고향 큰아버지 집으로 떠난다. 딸 넷에 막내 아들 하나, 다섯 남매의 부모는 아들을 낳기 위해 딸 넷을 줄줄이 낳고도 아들 하나를 위해 모든 걸 희생했다. 당연 넷 딸은 천덕꾸러기로 자랐다. 큰아버지 또한 전형적인 가부장적 사고로 아들 없는 가족은 있으나 마나라고 여긴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다섯 남매는 만나면 으르렁거리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 티격태격한다. 게다가 생전의 부모님에게 금지옥엽이었던 아들은 소식도 없..

세줄 映 2020.04.30

용길이네 곱창집 - 정의신

재일교포 한인들의 애환을 그린 영화다. 시대 배경은 1960년대 후반 일본의 고도 성장 시기다. 2차 대전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김용길 가족 이야기다. 오사카 비행장 근처 조선인 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식당의 문패에는 金田이라는 성 아래 여섯 식구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다. 용길(아빠), 영순(엄마), 정화(큰딸), 이화(둘째), 미화(셋째), 時生(막내아들)이다. 용길은 일본의 제국전쟁에 끌려갔다가 한쪽 팔을 잃고 외팔이가 된다. 영순은 고향 제주에서 4.3 때 남편과 가족을 잃고 겨우 목숨을 건져 일본으로 피신했다. 용길도 돈 벌어서 고향 제주로 돌아가려 했는데 4.3 때 온 집안이 몰살을 당했고 곧 이어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돌아갈 고향을 잃어버렸다. 큰딸과 둘째딸은 용길의 전처 자..

세줄 映 2020.03.22

허니랜드 - 타마라 코테프스카, 류보미르 스테파노프

마케도니아 공화국 영화다. 아니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이라 해야 맞다. 작년에 정식으로 한국과도 외교 관계를 맺었는데 유엔 가입국 중에 쿠바, 시리아와 함께 한국이 수교하지 못한 3개국 중 하나였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그리스와의 국가 이름 분쟁이 오랜 기간 계속되다 작년에서야 두 나라 정상의 협정으로 국가명에 합의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일본, 북한과 그렇듯 어느 나라든 가까이 있는 국가끼리 분쟁과 갈등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없는 듯하다. 친구와 마누라는 바꿀 수 있어도 이웃 나라는 바꿀 수 없다는 말이 딱 맞다. 유럽의 작은 나라 북마케도니아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한국과 북마케도니아는 서로에게 생소하다. 봉준호 감독이 그랬다. 영화는 세계 공통의 언어라고,, 1인치 자막만 넘으면 세계 어떤 영화..

세줄 映 2020.02.28

작은 빛 - 조민재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골똘하게 생각하게 한 영화다. 소기업 선반공으로 일하고 있는 진무는 뇌수술을 받으면 기억을 잃을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는다. 기억을 잃기 전에 그동안 떨어져 살아야 했던 가족을 찾아 나선 진무는 캠코더에 가족의 일상을 담기 시작한다. 간만에 엄마를 찾아가 함께 밥을 먹는다. 근사한 외식이 아닌 방바닥에 놓인 밥상에 찌개와 김치를 놓고 먹는 소박한 밥상이다. 진무 가족은 엄마, 형, 누나까지 4인 가족이지만 서로의 울타리가 아닌 굴레였다. 자신 또한 가족을 돌보기보다 자기 한몸 챙기기 버거운 가난한 노동자다. 진무는 어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재혼으로 진무를 낳았다. 엄마는 아버지 없이 진무를 키웠다. 형과 누나는 성이 다르거나 배 다른 남매들이다. 엄마는 딸을 홀로..

세줄 映 2020.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