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줄 映 64

태어나길 잘했어 - 최진영

누군가는 죽지 못해 살고 누군가는 살기 위해 발버둥친다. 이 영화는 땀이 많이 나는 다한증으로 사회 생활에 지장을 받고 있는 여성의 이야기다. 춘희는 어릴 적 사고를 당해 같은 날 부모님이 돌아가신다. 외할머니 보살핌으로 외삼촌 집에서 사춘기를 보냈다. 외할머니의 따뜻함이 있다 해도 외숙모의 구박과 동갑내기 고종 사촌의 시기 때문에 힘들다. 춘희는 성인이 되어서도 제대로 된 직장을 갖지 못하고 연애도 할 수 없다. 종일 마늘을 까는 알바로 생계를 유지한다. 영화는 춘희의 현재와 어린 시절을 교차하면서 보여준다. 때론 너무나 사실적으로 때론 환타지가 섞인 이야기를 따라 가면서 춘희의 삶을 보여준다. 다소 어두울 수 있는 소재인데도 영화는 밝은 편이다. 결말도 희망적으로 끝난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이 가장 ..

세줄 映 2022.05.15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 박동훈

상위 1% 성적만 들어갈 수 있는 유명 자사고에 다니는 학생과 북한에서 내려온 수학자의 아름다운 만남과 화해를 그린 영화다. 어렵게 느껴지는 수학에 관한 영화인데도 몰입해서 볼 수 있었다. 자사고 기숙사에 머무는 한지우(김동휘)와 탈북자 수위인 이학성(최민식)은 처음 악연으로 만난다. 가난한 홀어머니는 어렵게 들어간 학교에서 아들이 잘 적응하길 바라지만 담임은 전학을 권유한다. 명문대 진학을 위해 친구들은 모두 과외를 받지만 지우는 그림의 떡이다. 지우의 딱한 사정을 안 이학성은 지우에게 수학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천재 수학자의 가르침에 실력이 향상되는 것도 잠시 지우는 시험문제 유출범으로 지목된다.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면 이 사건을 무마해주겠다는 담임의 제의를 지우는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되는데 이학..

세줄 映 2022.03.30

원 세컨드 - 장이모

간만에 참으로 감동적인 영화를 봤다. 극장에서든 넷플릭스에서든 상위권을 차지하는 영화는 죽고 죽이는 범죄 영화나 일단 웃기는 게 우선인 오락 영화다. 코로나에 살기도 팍팍한데 영화라도 재밌어야 한다면 동의하겠다. 이 영화는 장이모 감독의 최근작이다. 초창기 영화 만큼은 아니나 그래도 영화가 과연 어때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려준 작품이다. 영화제를 Film Festival이라 하지만 사진이든 영화든 요즘 필름으로 찍는 경우는 드물다. 훗날 필름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60년대 중국 문화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모든 것을 관이 주도하는 시대에 집단 생활을 하는 주민들의 유일한 문화 생활은 영화 보기였다. 중국의 어느 소도시에 낯선 남자가 영화를 보기 위해 찾아 온다...

세줄 映 2022.02.10

휴가 - 이란희

늘 시간에 쫓기며 살기에 시간 알기를 금쪽으로 여기는 내가 이 영화는 두 번을 봤다. 포스터와 제목만 보면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고 했던 광고 문구처럼 고상한 휴가를 생각하기 쉽지만 영화 속 휴가는 그렇지 않다. 20년 동안 일한 가구회사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이 부당해고라며 천막 농성을 했다. 그러기를 5년이다. 법정까지 간 소송에서 회사의 해고는 정당했다는 최종 판결을 받는다. 그동안의 고생이 물거품이 될 것인가. 노동자들은 점점 지쳐간다. 이 영화에는 밥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100만 구독자를 자랑하는 유튜브 먹방에서 먹는 음식과는 다르다. 먹방에서 먹는 음식은 노동과 아무 상관이 없다. 이 영화에 나오는 밥은 거룩하다. 노동의 댓가로 산 쌀과 야채로 만든 밥을 굳은 살이 박힌 손으로 먹는 밥..

세줄 映 2021.12.21

국도극장 - 전지희

잔잔하면서 울림이 있는 영화다. 흥행 때문인지 갈수록 영화가 자극적으로 흘러가는 시대에 이 영화는 보기 드물게 시적인 작품이다. 법대를 나왔으나 만년 고시생으로 세월을 보내던 기태(이동휘)는 고향인 벌교로 내려온다. 고향에 왔으나 모두가 서먹하기만 하다. 엄마는 오직 형만을 챙기고 오랜 만에 보는 친구들도 대면대면하다. 모두들 법대 나왔으니 성공할 줄 았았으나 땡전 한 푼 없이 내려온 기태를 한심하게 바라본다. 생계를 위해 읍내 극장에 매표원으로 취직을 한다. 이 극장 이름이 국도극장이다. 전지희 감독이 서울 을지로에 있던 국도극장을 이곳에 소환한 것이다. 지방 소읍의 극장으로 어울리지 않지만 기태는 그곳에서 간판을 그리는 오씨를 만난다. 오랜 만에 만난 동창생 영은(이상희)은 가수 지망생으로 억척스럽게..

세줄 映 2021.12.15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 이태겸

보는 내내 마음이 답답하다가 먹먹하다가 했다. 영화는 한국 사회의 부당한 노동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원청과 하청의 수직 계약 관계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노노 갈등, 직장 내 성차별 등까지 다루며 노동자 연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정은(유다인)은 7년 동안 다니던 회사에서 하청 업체로 파견 근무를 명령 받는다.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퇴사하게 만들려는 회사의 목적이다. 송전탑을 관리하는 섬에 도착한 정은은 그곳 소장과 직원들의 냉담한 대우에도 이를 악물고 버틴다. 해고는 곧 죽음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얼마 못 버티고 떠날 것으로 생각했던 하청업체 노동자 충식(오정세)은 조금씩 정은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엄마 없이 세 아이를 키우는 충식은 대리 운전과 편의점 알바까지 하며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가장..

세줄 映 2021.12.05

갈매기 - 김미조

오랜 기간 전통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해온 오복이라는 여성이 있다. 비린내 맡으며 장사를 했고 생활력 없는 남편과 두 딸을 위해 가정일까지 하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평생 장사를 했던 시장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상인들끼리 모여 투쟁 중이다. 어느 날 상인들과 데모를 마치고 회식을 가졌는데 술에 취한 오복을 그 상인 단체 간부가 성폭력을 한다. 하혈로 바지가 젖을 정도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난망한 중에 사연 모르는 딸은 엄마가 다시 생리를 시작했다고 놀린다. 오복은 고민 끝에 큰딸에게 사실을 말한 후 고소를 하기로 결심한다. 이때부터 60대 아줌마의 투쟁이 시작된다. 성폭행 당사자는 증거 있느냐고 발뺌을 하고 시장 사람들 또한 젊은 남자가 60 넘은 여자를 성폭행 했겠느냐고 비아냥댄다..

세줄 映 2021.11.22

혼자 사는 사람들 - 홍성은

간만에 잔잔하면서 울림이 있는 영화를 봤다. 온갖 욕설과 폭력, 그러면서도 너무나 비현실적인 영화들이 많은 작금의 현실에서 이런 영화는 보석처럼 빛난다. 2년 가까이 코로나로 극장 나들이가 소원했는데 이 영화로 위로를 받는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여성이 이끌어 가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유진아, 그는 자기에게 말을 걸지 않는 사람을 좋아한다. 신용카드 회사 고객 상담실에서 일한다. 사람을 대면하는 것이 아닌 오직 상담 전화로 소통하는 것이다. 회사 동료들과도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다. 오직 칸막이가 있는 자기 만의 공간에서 전화로 사람을 만날 뿐이다. 온갖 진상 고객들의 황당한 상담을 천연덕스럽게 받아넘기는 실력 덕분에 우수 사원 표창을 받는다. 진아가 어릴 때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던 아버지는 ..

세줄 映 2021.11.11

좋은 사람 - 정욱

이런 영화를 철학적인 작품이라고 하던가. 너무나 평범한 제목이라 재미 없게 느껴지지만 긴장감을 갖고 몰입해서 봤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면서도 재밌까지 있는 영화다. 누구나 자신은 그런 대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경석은 고등학교 1학년 담임 교사다. 음주 문제로 아내에게 이혼 당하고 혼자 살지만 인상 좋고 학생들에게도 좋은 선생님으로 평가 받는다. 교실에서 지갑 도난 사건이 일어난다. 반에서 왕따를 당해 늘 혼자인 세익이 범인으로 의심 받지만 경석은 믿지 않는다. 부모가 없는 세익은 큰엄마와 함께 살고 알바까지 하며 학교에 다닌다. 딱 의심 받기 좋은 조건이다. 교무실로 찾아 온 학생 하나가 세익이 체육 시간에 교실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증언까지 한다. 상..

세줄 映 2021.10.16

남매의 여름밤 - 윤단비

잔잔하면서 울림이 있는 영화를 봤다. 코로나 시대에 모든 일상이 엉망이 되고 일부 업계는 쑥대밭이 되었다. 영화판도 코로나로 초토화가 된 분야다. 영화 개봉도 문제지만 영화 만드는 일도 많은 제약을 받는다. 코로나 이전에 찍은 작품이지만 이런 영화로 황폐해진 마음을 정화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저예산 영화이면서 이렇게 묵직한 울림을 주는 작품 만나기 쉽지 않다. 이혼하고 두 자녀를 키우는 남자가 있다. 방학을 맞아 아이들을 데리고 아버지 집을 방문한다. 팔순의 아버지는 홀로 시골 집을 지키고 있다. 반지하 방에서 사는 아들에 비해 아버지 집은 2층 단독 주택이다. 할아버지와 만남이 어색했던 아이들은 넓은 집에 금방 적응을 한다. 그동안 아들은 아버지가 틈틈히 도와주었지만 그때마다 사업에 실패해 말아..

세줄 映 2021.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