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줄 映 64

거짓말 - 김동명

리플리 증후(Ripley Syndrome)이란 말이 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을 일삼고 그 거짓말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나도 예전에 그런 사람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데 그것이 리플리 증후군이란 것은 몰랐다. 그냥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할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이 영화도 거짓말로 자신의 일상을 치장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거짓말이란 제목을 가진 영화가 여럿이라 제목이 다소 식상하지만 내용에 가장 적합한 제목이기도 하다. 아영(김꽃비)은 피부과에서 간호사 보조로 일하며 빠듯한 월급으로 생활을 꾸려간다. 집에는 재수생 동생과 알콜 중독자 언니가 늘 아영의 어깨를 짓누른다. 순박한 남자 친구 태호에게까지 아영은 아버지가 중견 기업 사장이고 동생은 대학생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

세줄 映 2017.04.17

디판 - 자크 오디아르

만드는 작품마다 감동을 주는 감독이 자크 오다아드 감독이다. 프랑스 감독으로 소외된 계층의 삶을 밀도 있게 다룬다. 어느 한 작품 처지지 않는 고른 작품성을 갖고 있다. 그의 영화는 상업성이 떨어져선지 영화제에서나 볼 수 있는 작품이 많다. 나 같은 영화는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이 영화는 스리랑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어떻게 프랑스 감독이 멀고 먼 동양의 섬나라 스리랑카에 관심을 가졌는지 신기하다. 스리랑카 내전 또한 식민 지배했던 영국이 저질러 놓은 일이다. 내전을 피해 외국으로 망명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남자가 브로커에게 위조 여권을 받는다. 여권에 새겨진 이름이 이고 영화의 제목이 된다. 망명하기에는 가족이 유리하다. 그래서 모르는 여자와 어린 소녀를 아내와 딸..

세줄 映 2017.01.22

법정 스님의 의자 - 임성구

법정 스님의 책을 즐겨 읽던 시절이 있었다. 정갈하고 담백한 글에서 당신의 성품을 엿볼 수 있었다. 스님이 떠난 지도 다섯 해가 흘렀다. 기억하는 것에는 동기가 필요한데 이 영화를 보며 스님을 생각했다. 입적하시기 전 세상에 내놓은 말빚을 거둬들이길 원해 당신이 쓴 모든 책을 절판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스님이 머물던 불일암에 갔을 때 봤던 의자가 생각난다. 스님은 모든 것을 털고 가니 자신을 잊으라 했지만 남은 사람들은 기억을 한다. 절판된 책의 향기는 물론 당신이 머물렀던 공간에서 각자의 추억을 되새김 한다. 때론 영화가 이렇게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도 하는가 보다. 은은히 우러나는 녹차향 같은 영화다.

세줄 映 2016.03.10

아델라인: 멈춰진 시간 - 리 톨랜드 크리거

많이 알려지지 않은 감독의 작품으로 영화 제목 아델라인은 여자 주인공 이름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이 저주 받은 병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그 저주병은 바로 영원이 늙지 않는 것이다. 누구든 늙지 않는 것이 소원이건만 그녀는 왜 자신이 늙지 않는 것을 저주라고 생각할까. 아델라인은 29살의 어느 날 우연한 사고를 당한 이후 딱 29살에 멈춰 늙지 않게 된다. 자신이 늙지 않음으로 해서 주변과 단절된 삶을 살게 되는데 10년 단위로 이사를 하면서 신분을 숨기고 산다. 그러던 어느날 파티에서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접근하는 남자 엘리스를 알게 되고 남자 친구는 결혼 약속을 알리기 위해 아델라인을 집에 초대한다. 뜻밖에 엘리스의 아버지는 아델라인의 40년전 남친이다. 평생을 잊지 못하고 마음 속에 담고 있던 옛 애..

세줄 映 2016.02.21

스틸 라이프 - 우베르토 파졸리니

혼자 사는 남자가 혼자 살다가 죽은 사람의 뒷처리를 맡는다. 혼자 사는 남자는 라는 22년 차 구청 공무원이다. 그의 임무는 혼자 살다 죽은 사람의 유품 정리와 장례까지 치른 후 납골을 묘지에 안장하는 일이다. 무연고 사망 처리는 정해진 행정서류만 작성해서 보고하고 장례도 형식적으로 하면 그만이지만 존 메이는 성격상 그러지를 못한다. 사망자의 유품에서 연고자의 연락처를 찾아 일일이 소식을 전한다. 무연고자의 가족은 대부분 거절하거나 연락을 받지 않는다. 공무원 상사는 지나치게 꼼꼼해서 일처리가 늦는 존 메이가 못마땅하다. 존 메이는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시각에 출근을 한다. 퇴근 후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저녁 요리를 해서 정해진 정각에 식사를 한다. 친한 친구도 특별한 취미도 없다. 한 마디로 참 ..

세줄 映 2016.02.01

카트 - 부지영

100만원 남짓 벌어서 빠듯하게 살림을 꾸려가는 대형 마트 노동자들 이야기다. 일자리가 있다는 것을 큰 행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내 복지는 언감생심 꿈도 못꾼다. 휴게실이라고 해야 청소도구를 넣어두는 한쪽에 전기장판이 깔린 좁은 공간에서 오손도손 점심을 먹고 봉지 커피라도 마실 수 있는 것이 어디인가. 그들은 이런 조건을 크게 문제 삼지 않고 그러려니 하면서 받아들이고 묵묵히 일한다.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곧 정규직으로 전환을 앞둔 선희를 비롯해 마트 직원들은 느닷없는 전화 문자로 곧 외부 계약직으로 전환이 된다는 회사 방침을 통보받는다. 노동법을 아는 사람에게서 외부 계약직은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재계약을 하지 못하면 직장에서 짤리는 것이라는 말에 동요하기 시작하고 이 부당함에 맞서 노조를 결성..

세줄 映 2015.01.22

서칭 포 슈가맨 - 말릭 벤젤룰

무명이었던 한 가수의 고단한 삶을 따라가는 다큐영화다. 뮤지션 식스토 로드리게스, 미국에서는 밤무대를 전전하는 무명이었으나 우연히 흘러간 남아공에서는 공전의 히트를 친다.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모르는 사람을 엉뚱한 곳에서 유명세를 치른 인생을 어떻게 설명할까. 자기가 알린 것이 아닌 남이 알아준 인생도 살 만하겠다. 다큐 영화이지만 아주 재밌는 영화다.

세줄 映 2014.11.19

울지마 톤즈 - 구수환

영화를 보고서야 세상에 이런 분이 있다는 걸 알았다. 아프리가 수단에서 의료봉사를 하던 이태석 신부가 지병으로 타계한다. 그의 사후에 이태석 신부님이 남긴 거룩한 행적을 기린 다큐 영화다. 사람은 한 번 나서 한 번 죽지만 이런 삶을 살다 가신 분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제껏 밥만 축내고 산 내 인생이 부끄럽지만 뒤늦게 이렇게 아름다운 인생을 발견하는 기쁨도 있다. 꾸역꾸역 살아야겠다.

세줄 映 2014.10.29

무게 - 전규환

나는 이런 영화를 좋아한다. 날것 그대로의 리얼리티와 환타지가 결합되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다. 제한 상영가 판정을 받고 심의 통과가 안되어 한동안 개봉을 못하고 갇혀 있다가 몇 군데 손을 봐 재심을 통과한 후에야 세상에 나온 작품이다. 전규환 영화는 늘 이렇게 생채기를 몇 개씩 남기며 관객에게 선을 보인다. 고아원에서 자란 정씨는(조재현) 어렸을 때 입양 되어 양장점을 하는 새엄마의 아들과 함께 컸다. 애인에게만 한눈을 파는 엄마 밑에서 형제는 서로에게 애틋한 감정을 갖게 된다. 이후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형제는 엄마에게 버림을 받는다. 사고로 곱추가 된 정씨는 시체 안치소에서 시신을 닦는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 동생은 양장점 재단사로 일하면서 성전환 수술을 원하는 트렌스젠더다. 이것부터가 영화..

세줄 映 2014.07.15

궤도 - 김광호

나는 이런 영화를 좋아한다. 많은 영화를 보기보다 마음 가는 영화를 깊이 보는 것을 선호한다. 이 영화도 몇 번을 봤던가. 대사가 거의 없는 영상으로 쓴 詩라고 해도 되겠다. 아니 대사가 필요 없다. 스포일러 따질 것도 없다. 어릴 적 사고로 두 팔을 잃은 남자는 엄마에 대한 미움과 미안함을 동시에 안고 산다. 외딴 집에서 홀로 산나물을 캐며 살기에 누구와 대화할 일도 없다. 가슴에 깊이 박힌 상처 때문에 말문을 닫고 산다고 해도 되겠다. 두 발로 담배를 꺼내고 성냥을 켜고 깊이 들이 마신 담배 연기를 내뿜을 때의 고독이라니,, 절로 애틋함과 동시에 남자의 신산한 인생에 한숨이 나온다. 천년 묵은 고독이 이런 것일까. 발로 면도도 하고 머리까지 감는다. 없으면 불편하지만 팔이 없다고 죽으란 법은 없는 모..

세줄 映 2014.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