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껄끄럽지 않으면서 스펀지에 물 스미듯 조금씩 가슴을 적셔오는 시집이 있다. 이 시집이 그랬다. 두 번째 시집이라는데 나는 처음 만난 시인이다. 1993년에 등단했으니 년식이 다소 오래 되었다. 그런데도 시에서 오래된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반면에 시집 곳곳에 촘촘하게 새겨진 나이테의 단단함이 제대로 전달된다. 년식은 낡은 것이 아니라 적당히 숙성한 것이다. 시인의 말에 이런 문구를 남겼다. 오랜 기간의 공백이었으나 멀지 않은 날들의 기록이다. 예민하지 못했던 삶에게 값을 치르는 시간이었거나 스스로 익숙해지는 허물이었다. 자신을 설명하는 방법도 여럿이나 시인의 말은 이렇게 쓸 일이다. 가족에게 고맙다거나 아내에게 바친다거나 하는 일기장 메모 같은 시인의 말과는 차원이 다르다. 첫장에 실린 시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