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자유로운 영혼으로 혼자서 걸었습니다 - 김인식

마루안 2021. 8. 6. 23:19

 

 

 

예전에 인도 여행 열풍이 분 적이 있다. 그 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훌쩍 인도로 건너가 반 년쯤 머물다 온 지인이 있었다. 그때 나도 곧 다녀와야지 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영영 못 가고 말았다.

 

먼 여행지일수록 떠남을 일단 저지르고 봐야한다. 많은 인생사가 그렇지만 여행도 갈 이유보다 못 가는 핑계가 더 많이 생기는 법이다. 내게는 인도도, 티벳도, 몽골도 늘 생각만 했지 떠나지 못한 여행지였다.

 

내 인생은 한 달쯤 온전히 여행자가 된다는 것이 쉽지 않을 만큼 각박했다. 산티아고 순례길도 그랬다. 늘 떠나고 싶었던 여행지이면서 실행하지 못했던 곳, 못가는 아쉬움을 달래느라 여러 여행서를 읽었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 책은 김인식 선생이 70살이 된 해에 혼자 산티아고를 걸은 여행서다. 제목에 <혼자서 걸었습니다>가 눈에 딱 들어온다. 여행의 가장 큰 묘미는 걷는 것이고 그것도 혼자 걷는 것이다. 저자는 일찍부터 해외 파견 근무를 많이 했던 터라 외국 여행이 덜 설렐 수 있겠으나 이 순례길은 잠 진지하게 걸었다.

 

나도 산티아고 여행서를 여럿 읽었지만 이 책만큼 몰입이 되지는 않았다.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한 문학적 여행기도 아니고 맛집과 숙박 업소를 소개하는 책도 아니다. 그저 노년기에 접어든 한 남성의 묵묵한 걷기 여행기다.

 

종일 걷고 허름한 숙소에서 쉬었다가 새벽길을 나서 길에서 만나는 해돋이의 경건함을 저절로 느끼게 한다. 노비였다가 귀족이였다가 황제였다가 여행기는 시종 인간의 희로애락을 생각하게 한다. 33일의 걷기 여행에서 저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을 한다.

 

누가 그랬던가. 길에서 만난 사람은 모두 스승이라고, 또 누군가 그랬다. 가슴 떨릴 때 떠나라 다리 떨릴 때면 늦는다고,, 코로나로 여행길이 꽉 막힌 시국에서 이 책으로 위안을 삼는다. 책에 나온 인상 깊은 문장을 옮긴다.

 

*쭉 뻗어 있는 메세타평원 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간혹 바람이 불어오면 길가에 뜨문뜨문 서 있는 가로수에서 살랑대며 손짓해주는 나뭇잎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림자와 함께 걷고 있는 나만 있을 뿐이다.

 

순례자의 하루는 단순하다. 오직 걷는 것만이 일과다. 걷기 위해 먹고 걷기 위해 잔다. 비 오면 비 맞으며 걷고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으며 걷는다. 쨍쨍 내리쬐는 땡볕 아래에서도 걷고 달빛 아래에서도 걷는다. 많이 걷기도 하고 적게 걷기도 한다. 그렇게 그저 묵묵히 걷는다. 그런 순례자의 마음은 가난하고 단순하다. *책에서 부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