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대답이고 부탁인 말 - 이현승 시집

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흡인력 있게 읽히는 시집이다. 지루증 환자처럼 웬만한 시집에는 감흥이 없거나 좀처럼 감탄하지 못하는 편인데 이 시집은 드물 게 예외다. 아직 두 달쯤 남았지만 아마도 내가 정한 올해의 시집이 될 듯싶다. 해마다 연말이면 나름의 규칙이 있다. 한 해에 본 영화와 시집을 나열해 보면서 나 혼자만의 시상(施賞)을 하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영화 보기는 많이 줄었으나 읽은 시집 숫자는 늘었다. 보통 5권 정도를 꼽는데 올해는 이 시집이 맨 앞자리다. 시집은 소설과 다르게 여러 번 읽게 만드는 힘이 있어야 한다. 좋은 약이 입에 쓸지는 몰라도 좋은 시는 일단 입에 붙어 술술 읽혀야 한다. 읽으면서 그 행간에 끼어들 여지가 자꾸 생겨야 반복해서 읽고 싶어진다. 한 권의 시집을 한..

네줄 冊 2021.11.01

도망가자, 깨끗한 집으로 - 신우리

책 제목만 보면 어떤 류의 책인지 다소 애매하다. 알고 보니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는 책이다. 적게 갖고 적게 쓰는 것이 환경을 살리는 길임을 알려준다. 저자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나처럼 한번 손에 쥐면 놓지 않는 욕심쟁이였다. 저자는 두 아이의 엄마다. 산후우울증으로 혼란을 겪던 중, 밤마다 쇼핑몰을 찾아 주문하는 것으로 욕망을 풀었다. 집안에 가득 들어찬 물건들 때문에 창문을 가릴 정도다. 어느 날 짐더미에서 탈출하기로 마음 먹고 비우는 삶을 실천한다. 이제서야 왜 책 제목이 인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짐으로 가득 찬 거실뿐 아니라 현관, 주방, 장롱, 베란다까지 어떻게 비우고 정리해서 미니멀리즘을 실천할 수 있었는지 꼼꼼하게 알려준다. 모든 걸 다 따라할 수는 없더라도 저자의 실천 중에 절반만..

네줄 冊 2021.10.27

히트의 탄생 - 유승재

재밌게 읽었다. 오십대에 접어들면서 노후 대책보다는 추억을 되새기는 일이 잦아졌다. 이런 책이 눈에 쏙 들어오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책 외에는 신상품에 대한 호기심이 별로 없는 편이다. 가령 스마트폰을 주변 사람들 다 갖고 있어도 홀로 폴터폰을 썼다. 모임에서 연락 수단을 전화가 아닌 카톡으로 통일하자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을 썼다. 지금은 스마트폰이 없으면 일상을 제대로 유지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많은 부분에서 여전히 아날로그로 산다. 나는 요즘은 거의 쓰지 않는다는 공동인증서를 아직 이용한다. 공동인증서가 특별히 불편한 것은 없고 오히려 익숙해서 더 편하다. 보안? 과연 나한테 보안을 요구할 만한 일이 있을까. 비밀 번호도 최대한 기억하기 좋은 것으로 한다. 공짜나 요행을 바라지 ..

네줄 冊 2021.10.22

골목의 약탈자들 - 장나래, 김완

코로나로 모든 일상이 엉망이 되었다. 폭풍우라면 지나가길 조용히 기다리면 잠잠해지련만 이런 전염병은 겪어 보지 못했으니 어떻게 헤쳐나갈지도 막막하다. 대통령도 국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겨 나가야 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다.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으로 가장 고통 받는 사람은 자영업자들이다. 물론 쑥대밭이 된 항공이나 여행 업계보다는 덜 하겠으나 유행이 심해질 때마다 영업을 금지 당하거나 시간 제약으로 막대한 손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다. 물론 코로나 때문에 되레 호황을 누리는 업계가 있다. 일부 업종은 오히려 창업이 활발하다고 한다. 우연히 자극적인 제목의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라니,, 창업 시장에서 호갱이 안 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인간 세상에는 어디든 뒤통수 쳐서 먹고 사는 사람이 있다..

네줄 冊 2021.10.20

아버지의 첫 직업은 머슴이었다 - 한대웅

어떤 소설보다도 흥미롭게 읽었다. 1941년 생 아버지의 일생을 1969년 생인 아들이 기록한 책이다. 아버지의 구술을 아들이 받아 적어 책으로 낸 것이다. 평범한 한 아버지의 일생이 어떤 위인전보다 값지게 읽혔다. 내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기에 더욱 생소하면서 흥미로웠을 것이다. 내 생일과 아버지 기일은 며칠 차이가 나니 않을 정도로 나는 간신히 유복자를 면했다. 나는 애틋한 자식이 아니라 젊은 어머니의 재혼길을 막은 불효자였다. 어렸을 때 친구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살림을 부수고 처자식을 때렸다. 그럴 때마다 온 가족이 뿔뿔히 흩어져 동네 남의 집으로 피신을 했다. 친구는 늘 한참 떨어진 우리집으로 숨어들었다. 한참 후 잠잠해지면 돌아가기도 했지만 대부분 우리집에서 자고 갔다. 그때 "저 새..

네줄 冊 2021.10.17

이름이 법이 될 때 - 정혜진

눈에 쏙 들어오는 책 제목이다. 제목만 읽어도 일상의 소금 역할을 할 것 같은 책이 있는데 이 책이 그렇다. 이런 책을 들출 때는 먼저 저자를 꼼꼼히 살핀다. 저자 정혜진은 15년 간의 신문기자 생활을 접고 로스쿨에 입학에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오랜 기간 국선변호사로도 활동했다. 그 과정을 기록한 에세이 를 읽으면 낮을 곳을 향한 저자의 정체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정혜진은 뒤늦게 법률을 공부해 자기 길을 걷고 있는 여성 변호사다. 이름이 법이 된 경우로 대표적인 게 김영란법이다. 속칭 부패방지법으로 청탁금지법이다. 이 좋은 법에도 피해자는 있다. 그동안 부정부패로 연명하며 부를 축적해 왔던 기득권층들은 이 법의 최대 피해자다. 50년 전에 있지만 있으나마나 했던 근로기준법도 전태일이 스스로 귀한..

네줄 冊 2021.10.15

나비가면 - 박지웅 시집

요즘 박지웅의 네 번째 시집인 을 부지런히 읽고 있다. 몰입이 잘 안 되는 몇 편을 빼고는 여전히 그의 시는 본전 생각이 나지 않게 한다. 아마도 2007년 첫 시집 이후 4년이나 5년 터울인 올림픽 주기로 시집을 내기 때문일 것이다. 올림픽이든 월드컵 축구든 4년이 기다림과 즐기는 감동이 가장 적당하다. 시집 내는 것도 이 터울인 4년 주기가 가장 무난하다. 그래서일까. 박지웅의 네 번째 시집도 알맞게 숙성된 시들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동안 내가 읽은 그의 시집을 나열해 본다. , , , 이다. 철학적이고 염세적이고 몽환적이고 우화적이고,, 또 뭐 있나? 어쨌든 지금까지 그의 시를 읽어 본 바로 검은 우울과 나비로 집약할 수 있겠다. 시중에 제목만 그럴 듯하면서 공감이 안 가는 해독 불능의 암호로 ..

네줄 冊 2021.10.12

내 따스한 유령들 - 김선우 시집

김선우 시인이 새 시집을 냈다. 이전에 그의 시를 유심히 읽은 기억은 없다. 시에도 마음 가는 시기가 있는지 이번 시집을 들추며 여러 시에 공감을 했다. 시집 읽고 가능한 흔적 남기지 말자는 게 기본 모토이나 이 시집은 그냥 지나갈 수 없다. 코로나 시대에 쓰여진 시가 여럿 실렸고 지친 마음을 달래줄 위로와 희망적인 다짐을 새기게 된다. 인류는 더한 위기에도 살아 남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동안 인간이 저지른 악행을 경고하고 미래를 다짐 받는 것을 잊지 않는다. 작은 신이 되는 날 - 김선우 우주먼지로 만들어진 내가 우주먼지로 만들어진 당신을 향해 사랑한다, 말할 수 있어 말할 수 없이 찬란한 날 ​ 먼지 한점인 내가 먼지 한점인 당신을 위해 기꺼이 텅 비는 순간 ​ 한점 우주의 안쪽..

네줄 冊 2021.10.11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 - 권내현

강명관 선생의 가짜 남편 만들기를 읽고 이 책까지 읽게 되었다. 같은 사건을 저자의 시각에 따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 흥미로웠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주제의 책이 같은 해에 출간되었다. 이 책이 강명관 선생보다 2개월 먼저 나왔지만 내가 안 건 강명관 선생 책이 먼저였다. 그런 점에서 사람도 책도 인연이 있어야 만날 수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내가 세상의 모든 책을 읽을 수 없음에야 가능한 좋은 책을 읽고 싶다. 나이 먹을수록 미사여구의 달달한 문학 책보다 인간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이런 책에 더 눈길이 간다. 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제목이다. 제목에 지나친 욕심이 들어가면 되레 의미가 퇴색된다고 본다. 어쨌건 이 사건이 워낙 흥미로워서 이 책도 단숨에 읽어낼 수 있었다. 유유 사건 해석은..

네줄 冊 2021.10.08

가짜 남편 만들기 - 강명관

나는 이런 류의 역사책을 좋아한다. 소설은 잘 안 읽지만 실존했던 사건을 지은이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책 말이다. 요즘 언론에 자주 나오는 검찰 사주라는 엄청난 사건도 언론이나 정치적 시각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지 않던가. 검사 관련 책까지 낸 한 국회의원의 교묘한 거짓말이 마치 진실처럼 받아들여지고 본질과 초점이 엉뚱한 곳으로 향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도 역사서로 분류할 수 있지만 그 역사 또한 당대에 내가 살았더라도 어떤 것이 진실인지를 가늠하기 쉽지 않았을 듯하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 책에 나오는 사건을 이번에 알았다. 강명관 선생의 책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더 늦게 알았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영화 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을 때도 우리 역사에 비슷한 사건이 있다는 것은 몰랐다. 내가 이 책을 단숨..

네줄 冊 2021.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