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흡인력 있게 읽히는 시집이다. 지루증 환자처럼 웬만한 시집에는 감흥이 없거나 좀처럼 감탄하지 못하는 편인데 이 시집은 드물 게 예외다. 아직 두 달쯤 남았지만 아마도 내가 정한 올해의 시집이 될 듯싶다. 해마다 연말이면 나름의 규칙이 있다. 한 해에 본 영화와 시집을 나열해 보면서 나 혼자만의 시상(施賞)을 하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영화 보기는 많이 줄었으나 읽은 시집 숫자는 늘었다. 보통 5권 정도를 꼽는데 올해는 이 시집이 맨 앞자리다. 시집은 소설과 다르게 여러 번 읽게 만드는 힘이 있어야 한다. 좋은 약이 입에 쓸지는 몰라도 좋은 시는 일단 입에 붙어 술술 읽혀야 한다. 읽으면서 그 행간에 끼어들 여지가 자꾸 생겨야 반복해서 읽고 싶어진다. 한 권의 시집을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