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빛 바른 외곽 - 이우근 시집

시집 코너에서 시집 구경을 하고 있는데 어떤 중년 여성이 직원에게 묻는다. "선물 하려고 그러는데 요즘 잘 나가는 시집이 어떤 거죠?" 한쪽을 가리키며 직원이 안내를 한다. "여기에 진열된 책들이 잘 나가는 시집입니다." 가까운 곳이라 다 들린다. 직원이 안내한 코너는 흔이 메이저 출판사가 발행한 시집만 모아논 곳이다. 문학과지성, 창비, 문학동네 시집뿐이다. 그 시집들은 책장에 세워서 진열한 것이 아니라 앞 표지가 전부 보이게 바닥에 진열되었다. 타고난 아웃사이더인 나는 메이저보다 무명출판사 시집에 더 관심이 많다. 숨어 있는 시집 고르는데 관심을 두느라 곧 시선을 거뒀지만 잘 나가는 시집을 찾던 그 분은 어떤 것을 골랐을까. 모쪼록 좋은 시집과 인연이 닿았기를 바란다. 이우근 시집은 내가 찾은 보석 ..

네줄 冊 2022.02.08

언어의 높이뛰기 - 신지영

몇 페이지 읽으면서 바로 느낌이 오는 책이 있다. 이 책이 그렇다. 참 좋은 책을 골랐다는 뿌듯함도 생긴다. 읽는 내내 나의 말습관에 대한 반추와 함께 말 잘하는 것이 삶에서 얼마나 큰 기술인가를 깨닫게 된다. 이 책이 화법에 관한 처세술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언어의 사회 현상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성격처럼 언어 습관도 타고난 것이 절반을 차지한다고 본다. 글보다 말이 훨씬 그 사람의 성격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언어학자이자 음성학자인 저자가 쓴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이 가는 부문이 너무 많다. 가령, 언제부터 대통령 당선자가 당선인이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에 무릎을 쳤다. 노무현까지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에는 당선자였다. 이명박 때부터 당선자가 당선인이 되었다고 한다. 신지영 교수는 언..

네줄 冊 2022.02.04

대치동,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 - 조장훈

정말 좋은 책을 읽었다. 요 근래 이렇게 몰입해서 읽은 책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가독성이 있는 책이다. 강북에 살기에 강남 갈 일이 많지 않다. 예전에 직장이 강남에 있을 때도 대치동까지 갈 일은 별로 없었다. 이 책은 현재 대한민국 부동산 시세와 학벌 생산지의 중심지로 어떻게 대치동이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대치동에서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처음엔 강사로 한때는 원장으로 또 한때는 진학 상담가로 수많은 학생과 부모들을 만났다. 대치동에 관해서 만큼은 빠삭한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글도 아주 잘 쓴다. 이 책은 아파트 시세 차익 정보나 어떻게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처세술 책이 아니다. 자기 개발서는 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독파하고 나면 대한민국의 현실..

네줄 冊 2022.01.30

짜장면, 곱빼기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 박찬일

짜장면에 대한 아주 맛있는 추억담이다. 지나치게 주관적인 것 빼고는 나무랄 데 없는 책이다. 한국인에게 짜장면은 영혼 음식이다. 한식이 아니면서 짜장면 만큼 친근한 음식이 또 있을까. 짜장면의 유래가 어떻게 되든 나는 짜장면은 한식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음식이든 하늘에서 레시피가 딱 정해져서 떨어진 경우는 없다. 흔히 종가집 어쩌구 하는 한 집안의 음식도 대대로 내려왔다지만 남의 집 식구인 며느리가 시집 와 이어 받으면서 조금씩 변형을 한다. 한 국가의 음식도 그렇다. 그릇이 정해지고 재료가 전해지고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씩 재료가 첨가되면서 요리법도 변화 끝에 정착된 것이다. 짜장면이 중국 음식에 뿌리를 두었지만 한식이라고 해도 무방한 이유다. 이 책은 읽으면서 계속 침이 고인다. 세프이자 작가이기도 한..

네줄 冊 2022.01.21

꿈꾸는 구둣방 - 아지오

옷은 조금 크거나 작아도 입을 수 있으나 신발은 곤란하다. 조금 작다 싶으면 발가락이 아프고 헐렁하면 양말이 벗겨지거나 뒷굼치에 물집이 생기기도 한다. 자기 발에 맞는 신발이 중요한 이유다. 이 책은 구두를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다. 특정 저자를 내세우지 않고 구두 브랜드인 아지오로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 구둣방의 탄생 과정과 지향하는 바를 감동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읽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라고 할까. 두 인물을 주죽으로 끌고 간다. 구둣방 대표인 유석영과 구두 장인 안승문이다. 구두점으로 성공해 돈을 번 소상공인의 성공담이었다면 나는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돈을 밝히는 사람이지만 재테크나 성공담에 관심이 없다. 이 구둣방의 정식 사명은 이고 아지오(AGIO)는 수제화 상표다. ..

네줄 冊 2022.01.15

생명 가격표 -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을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이 책을 읽으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가격표가 정해져 있다는 것을 절실하게 알려준다. 저자는 보건 경제학자이자 통계학자다.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면 득달같이 견인차가 먼저 달려온다. 그 속도는 경찰자보다 빠르다. 같은 직업이어도 얼마나 밥줄이 절박한가는 속도에 달렸다. 경찰이야 차분히 자기 할 일 하면 되지만 견인차는 경쟁자가 오기 전에 선점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고로 죽은 생명에도 가격이 매겨져 있다는 것이다. 노숙자가 다쳤거나 죽었다면 병원은 환자 받기를 거부하거나 서로 떠넘긴다. 생명이 위급한 것은 같은데도 그 사람이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생사가 갈린다. 하물며 가격표가 매겨진 현실은 오죽할까. 자본주의..

네줄 冊 2022.01.11

바이러스 사회를 감염하다 - 남궁석

많은 공부가 되는 좋은 책을 읽었다. 거의 2년을 꼬박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에 시달리다 보니 이런 공부도 하게 된다. 보이지도 않은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엉망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을 지난 2년의 경험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저자 남궁석 선생은 농화학과 생화학을 전공했고 미국에 있는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해 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일반인들이 어려워할 수 있는 내용을 아주 조리있게 잘 설명해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백 년 전 유럽을 휩쓸었던 스페인 독감과 1980년 대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았던 에이즈 바이러스, 그리고 2년 전에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셋 다 사람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바이러스다. 이전부터 있었으나 몰랐던 것을 발견해 이..

네줄 冊 2022.01.08

유시민 스토리 - 이경식

유시민이 쓴 책뿐 아니라 유시민이란 이름이 들어간 책은 가능한 읽으려 한다. 심지어 반대편 사람이 쓴 유시민을 비판하는 책도 읽는다. 한 사람에 꽂히면 그가 들어간 모든 매체를 탐닉하는 습관이 있다. 시인도 마찬가지다. 시가 가슴에 들어오면 그 시인의 이전 글을 빠짐없이 찾아 읽는 편이다. 지독한 활자 중독자이기도 하지만 대충 읽기보다 철저하게 읽으려고 한다. 아마도 리영희, 신영복 선생과 함께 유시민도 나를 중독시키는 저자다. 그의 책이 어렵지 않게 읽히면서도 어디 가서 아는 체 하기 좋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은 작가 이경식이 쓴 유시민 평전이랄까. 아직 평전을 쓰기에는 유시민의 일생이 창창하지만 그래도 유시민이 걸어온 길을 정리할 수 있어 좋았다. 한 사람의 일생을 책 한 권으로 정의할 수는..

네줄 冊 2022.01.06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 전혜원

*우리는 모두 노동자다. 사전이 그리 정의할뿐더러 현실에서도 그렇다.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에서 ‘사람의 가치’는 그가 가진 ‘노동의 가치’와 연동된다.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좌우하는 것은 개인의 노동에 매겨지는 가치(임금)다. 값비싼 노동자일수록 촉망받는 인재로, 각광받는 결혼 상대자로, 존경받는 부모로 살아가기 쉽다. 반면 노동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저임금 노동자, 나아가 실업자는 최소한의 권리와 존엄조차 누리지 못할 때가 많다. 이 책은 노동력을 사람의 가치로 환산하는 오래된 현실이 합당한지에 대해 애써 판단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무 크고 머나먼 차원의 일이다. 대신에, 좋든 싫든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과 일터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에 주목한다. 요컨대 이 책은 플랫폼 노동에..

네줄 冊 2021.12.29

오늘은 밤이 온다 - 우혁 시집

갈수록 마음 가는 시집 만나기가 힘들다. 그런 와중에 눈에 번쩍 들어오는 시집을 만났다. 우혁의 첫 시집 다. 진공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듯 이렇게 공감 가는 시집을 만나면 떨리면서 기쁘다. 내친 김에 반복해서 읽었다. 우혁 시인은 1970년 출생으로 한국외대에서 인도어를 전공했다. 인도어가 어떤 언어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거대한 인구 대국 인도어를 공부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은 듯하다. 삶창에서 나오는 시집은 가능한 읽으려고 하는 편인데 이 생소한 이름이 박힌 시집을 별 기대하지 않고 들췄다가 제대로 빨려 들어갔다. 우혁이라는 짧아서 외우기 힘든 이름이 본명은 아닌 것 같고 어쨌든 이 시인을 마음에 담는다. *절벽 같은 마음으로 길을 핥아본다 나는 길의 미식가 누추하고 남루한 사연은 좀 접자 내가 닿아..

네줄 冊 2021.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