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법정스님 무소유, 산에서 만나다 - 정찬주

이 책은 법정 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여행기라고 하겠다. 작가 정찬주는 승려는 아니지만 법정 스님의 제자다. 예전에 샘터사에서 일 할 때 스님이 책을 내면서 인연이 닿아 평생 스승과 제자로 연을 맺었다. 법정 스님은 입적하기 전 세상에 말빚을 남기고 싶지 않다면서 자신의 책을 전부 절판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래도 정찬주 선생은 스님을 잊지 않고 이렇게 들꽃 향기가 나는 책을 썼다. 이 책도 스님에 대한 회상기다. 법정 스님이 태어난 곳부터 입적한 곳까지 스님이 살다간 흔적을 찾아 나선다. 스님의 속명인 박재철 소년은 어떤 아이였고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느 계기로 출가하게 되었는지를 세세하게 따라 간다.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을 보면 정체성을 알 수 있다. 예전에 스님이 쓴 책 무소유와 말의 침묵을 참 열심..

네줄 冊 2022.04.14

우리의 피는 얇아서 - 박은영 시집

울림 있는 시집이란 이런 거구나 했다. 새로운 시집 전문 출판사가 되려나. 시인의일요일에서 연달아 좋은 시집을 만난다. 기분 좋은 일이다. 집이 신촌이라 지척에 있는 안산과 인왕산을 자주 오른다. 보통 인왕산에 올라 안산으로 내려오는 코스가 대부분이다. 내려오는 마지막 지점이 보통 봉원사다. 봉원사 입구에는 엄청나게 큰 백목련이 있다. 목련이 꽃은 예쁘나 진 꽃이 조금 흉하다. 수북히 쌓인 목련잎이 시커멓게 변해가고 있다. 목련 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있는데 종소리가 들린다. 해거름에 듣는 범종 소리는 처음인 것 같다. 이렇게 사찰의 종소리가 아름다울 수 있구나 했다. 종을 치는 시간이 길기도 했다. 재보지 않았지만 10분은 족히 넘게 쳤을까. 노을을 바라보며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울림 있는 종소리에 ..

네줄 冊 2022.04.13

대통령의 염장이 - 유재철

예전부터 김영사가 책 제목 장사를 아주 잘한다. 이것도 하나의 경영 방침이다. 아무리 좋은 책도 팔리지 않으면 그저 종이에 불과하다. 신문은 야채를 싸거나 계란판으로 재생 가능하지만 일반 책은 그것도 어렵다. 저자 유재철 선생은 도합 6명의 전직 대통령을 염했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과 법정 스님도 유선생이 보내 드렸다.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법정 스님의 속명은 박재철로 유재철 선생과 이름이 같다. 이것도 묘한 인연 아니겠는가. 책은 술술 익힌다. 세상은 요지경이라 죽음도 참 가지가지다. 유명인이나 노숙자나 죽으면 똑같다. 나올 때 혼자 왔듯이 갈 때도 혼자 간다. 공수래공수거라고 하면서도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아득바득 욕심 부리며 산다. 지인의 죽은 몸을 봤을 때나 장례식장에서 잠시 경건해질 뿐 돌아..

네줄 冊 2022.04.12

삼척 간첩단 조작 사건 - 황병주 외

소설보다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어릴 때 초등학교는 국민학교였다. 아침이면 전교생이 운동장에 서서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들었다. 그때 꼭 하던 이야기가 간첩신고였다. 신고를 하면 복권 당첨처럼 큰 상금을 받는다고 했다. 간첩으로 의심되는 정황을 세세히 설명했다. 특히 유난히 친절한 사람이나 담배값을 모르는 사람을 의심하라 했다. 귀에 박히도록 듣던 간첩 이야기라서 이런 책을 보면 눈에 확 들어온다. 실제 간첩도 있었겠으나 대부분 만들어진 간첩이었다. 간첩 하면 북한에서 내려온 거라 생각했으나 나중 커서 남한에서도 간첩을 보냈다는 걸 알았다. 이 책은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인 황병주 선생 등 연구원들 네 명이 공동으로 쓴 책이다. 내가 소설을 잘 안 읽는 이유도 이런 책이 훨씬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엔..

네줄 冊 2022.04.10

아껴 둔 잠 - 한명희 시집

한명희, 같은 이름을 가진 시인이 여럿이다. 동명다인이다. 아마도 한국의 시인 중에서 한명희라는 이름이 가장 많지 싶다. 김철수 이영희 등 교과서에 나오는 이름을 가진 시인도 이 정도로 많지는 않다. 여성 시인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이 시집의 저자 한명희 시인은 남성이다. 시 읽는 사람보다 시 쓰는 사람이 더 많은 현실에서 같은 시인인 줄 알았다가 엉뚱한 시집을 만날 때가 있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여기지만 가끔 씁쓸하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유명한 문구를 패러디하자면 내게는 시집은 많고 시간은 없다가 되겠다. 그래서 늘 읽어야 할 시집 목록이 끊임없이 쌓이면서 줄어들지를 않는다. 까다롭게 고르는데도 그렇다. 내가 자주 써먹는 낭중지추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숨어 있어..

네줄 冊 2022.04.06

디 에센셜 - 김수영

오래 전에 김수영 전집을 읽은 후 김수영의 글을 이렇게 몰입해서 읽은 적이 없다. 김수영 시인은 1921년에 태어났다. 이 책은 탄생 백주년에 맞춰 나온 책으로 김수영 시인의 엑기스를 모은 책이라 하겠다. 60년이 지난 작품인데도 여전히 세련되게 읽히는 걸 보면 그의 재능을 가늠할 수 있다. 그는 일제시대에 교육을 받았고 연극을 하다 시를 썼다. 육이오 전쟁 때 거제소 포로 수용소에서 2년 넘게 살다 석방된다. 만약 그가 백석처럼 북에 남았다면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 분단으로 인해 많은 분야가 손실을 입었지만 예술계도 아까운 인재들이 묻히거나 단절되는 손실을 입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분단 세금이다. 그의 시는 읽는 맛이 있다. 특히 , , , , , , 등이 유독 읽는 맛이 있었다. 자주..

네줄 冊 2022.04.01

대서 즈음 - 강시현 시집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다. 시도 그렇다. 서 말 아니라 백 말이라도 읽어주는 독자가 없으면 그건 한갓 이불 속에 혼자 숨어서 하는 자위 행위에 불과하다. 열 권의 시집을 냈는데도 그 시인에게 아무 궁금증이 없는 경우가 있는 반면 단 한 권의 시집에서 그 시인을 홀딱 벗겨 해부해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강시현 시인이 그렇다. 시를 읽으면서 어떤 사람일지 정체성이 궁금해지는 경우다. 이 시집은 두 번째 시집이다. 한 시인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권은 읽은 후라고 보는데 세 번째까지 갈 것 없이 제대로 빨려들었다. 이 시인은 첫 번째 시집부터 다소 두껍다. 두 권 다 거의 100여 편의 시가 실렸다. 그런데도 그의 시는 건너 뛰고 싶은 작품 하나 없이 지루하지가 않고 술술 읽힌다...

네줄 冊 2022.03.31

지천명의 시간 - 전대호 시집

언젠가부터 나이에 관한 시가 나오면 유심히 들여다 본다. 아마도 50을 넘기고부터였을 것이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는 어서 나이를 먹어 서른이 되고 싶었는데 마흔 넘길 때 즈음 이렇게 중년의 문턱을 넘는구나 서글펐었다. 마흔 아홉쯤에 조금 혼란스러웠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느낌이랄까. 해마다 오는 봄과 가는 가을은 그대로인데 세월을 보는 눈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물며 오십 넘기고는 오죽할까. 오지 않을 것 같던 그 오십을 훌쩍 넘긴 지도 한참이다. 나이 드는 쓸쓸함 때문일까. 이런 제목이 붙은 시집에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이순을 넘기면 더욱 민감할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문장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어쨌든 시에 위로를 받으며 가능한 나이값은 하면서 살고 싶은 ..

네줄 冊 2022.03.29

나의 머랭 선생님 - 김륭 시집

또 하나의 시집 전문 출판사가 나온 모양이다. 너댓 군데 메이저 출판사가 장악하고 있는 시집계에서 이런 출판사의 출현은 반길 만하다. 호시탐탐 낚을 준비를 하고 있는 내 시 그물망에 이 출판사가 들어왔다. 이라는 이색적인 출판사다. 먼저 세 권이 나왔다. 셋 중 하나를 고른다. , 몇 편 읽다가 바로 방생을 한 나머지 시집도 좋은 시집일 것이나 내 잣대로는 냉정하게 하나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내 일상이 참 매말랐다. 별로 공감이 안 가는 시까지 인내심 발휘하며 눈에 넣을 만큼 여유롭지 않다. 편식을 하는 내 얕은 지식에 반성도 한다. 나는 게으른 독자이지 착한 독자가 아니다. 김륭은 지금까지 나온 시집들 제목이 전부 이색적이다. 더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읽은 그의 시집들이다. , < ..

네줄 冊 2022.03.25

재난 인류 - 송병건

경제학자인 송병건 선생의 책이다. 코로나로 2년 넘게 온 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든 지금에 딱 어울리는 책이다. 다소 두꺼운 책이지만 소설책 읽듯이 흥미롭게 읽었다. 질병과 자연재해로 인류가 겪어온 역사를 대중적인 문체로 잘 썼다. 가령 14세기 중엽에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 3분의 1이 사망하는 바람에 심각한 노동력 부족에 시달렸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그런 악조건에도 인류는 꿋꿋하게 살아 남았다. 혼자는 나약하지만 집단은 강하다는 것을 잘 알려준다고 하겠다. 16세기 신대륙에 상륙한 유럽인이 천연두를 전염시키는 바람에 원주민이 줄줄이 죽어나간 사실도 알게 된다. 그 외에 얼마나 많은 질병이 인간의 목숨을 위협했는지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홍역과 콜레라로 숱한 죽음을 가져온 질병사도 설명한다. 지..

네줄 冊 2022.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