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삼척 간첩단 조작 사건 - 황병주 외

마루안 2022. 4. 10. 19:55

 

 

 

소설보다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어릴 때 초등학교는 국민학교였다. 아침이면 전교생이 운동장에 서서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들었다. 그때 꼭 하던 이야기가 간첩신고였다.

 

신고를 하면 복권 당첨처럼 큰 상금을 받는다고 했다. 간첩으로 의심되는 정황을 세세히 설명했다. 특히 유난히 친절한 사람이나 담배값을 모르는 사람을 의심하라 했다.

 

귀에 박히도록 듣던 간첩 이야기라서 이런 책을 보면 눈에 확 들어온다. 실제 간첩도 있었겠으나 대부분 만들어진 간첩이었다. 간첩 하면 북한에서 내려온 거라 생각했으나 나중 커서 남한에서도 간첩을 보냈다는 걸 알았다.

 

이 책은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인 황병주 선생 등 연구원들 네 명이 공동으로 쓴 책이다. 내가 소설을 잘 안 읽는 이유도 이런 책이 훨씬 울림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엔 이렇게 소설보다 더 기막힌 인생을 산 사람들이 있다.

 

북에서 내려운 간첩은 진현식이다. 육이오 전쟁 이후 월북했던 그는 남파 간첩이 되어 노모를 모시고 사는 동생을 찾아온다. 그들의 고향 삼척이다. 동생 진항식은 당연히 신고를 해야 했지만 노모가 반대한다.

 

죽은 줄 알았던 둘째 아들의 귀환이 그저 눈물겨울 뿐이다. 아들은 두 시간쯤 머물다 북으로 돌아간다. 몇년 후 진현식은 두 번째로 내려온다. 그러나 그가 남쪽으로 내려온 며칠 후 울진 삼척 지구에 대규모 간첩 침투 사건이 일어난다.

 

남한 군대의 동해안 해안 경계가 강화되면서 진현식은 북으로 돌아갈 길이 막힌다. 육로로 귀환하라는 지령을 받지만 50대 중년인 진현식은 귀환에 실패하고 동생집에 은신하게 된다. 경계가 느슨해지면 해안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동생은 형에게 자수를 권유하지만 형은 북에 있는 가족 때문에 안 된다고 한다. 자수하면 남한의 가족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북한의 가족을 사지로 내모는 격이 된다. 북한은 남파공작원을 선발할 때 이런 것을 노린다고 한다.

 

분단 현실은 이렇게 암울하다. 남과 북의 정치적, 사상적 대립구도 하에서 애궂은 이산가족들만 희생되는 비극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간첩을 숨겨준 것은 분명 잘못이다. 그러나 핏줄의 정을 끊을 수는 없었다. 공안 당국은 이들 가족 12명을 붙잡아 간첩단으로 조작한다. 

 

모진 고문 끝에 간첩을 인정한 이 가족은 모두 실형을 선고 받고 복역한다. 삼척 사건은 두 명의 사형집행과 네 명의 자살자를 내는 비극적 사건이다. 나머지도 온전한 삶을 살지 못했다.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이혼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출소 후에도 감시를 당하며 취직도 못하고 밑바닥 삶을 살아야 했다. 과거사 진실화해위원회의 도움으로 사건 발생 37년 만에 삼척 간첩단 사건은 무죄로 귀결되었다.

 

이 책은  사건 발단 배경과 과정 그리고 어떻게 간첩으로 만들었고 훗날 무죄 판결까지 세세히 기록했다. 국가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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