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425

너의 하늘을 보아 - 박노해 시집

박노해 시인이 신간 시집 를 냈다. 이전의 시집이 언제 나왔나 봤더니 2010년이다. 그 시집도 12년 만에 냈다던데 다시 12년 후에 새 시집이 나온 것이다. 이전 시집처럼 이 시집도 성경처럼 두껍다. 500 페이지가 넘는다. 실제 그의 시집은 성경 읽는 것처럼 곁에 두고 틈틈히 읽어야 한다. 단숨에 읽더라도 질리지는 않는다. 노동시를 많이 썼던 초기 시가 다소 압박감을 줬다면 요즘 시는 힘을 많이 뺐다. 그래서 예전 시에 비해 훨씬 부담 없이 읽힌다. 그렇다고 무게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시가 치밀한 문학적 구조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기에 머리 쥐어 뜯으며 읽을 필요는 없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아! 이런 생각 때문에 시인은 다르구나"를 중얼거리게 된다고 할까. 시인은 시대에 맞서 싸우다 사..

네줄 冊 2022.06.05

멍 - 부정일 시집

천성이란게 있다. 성악설이니 성선설이니 그런 걸 떠나서 누구에게나 선과 악이 절반씩 들어 있다고 본다. 단 얼마나 선이 악을 누르고 표출되는 정도가 선함의 실천이지 않을까. 곧 악을 누르는 힘이 좀더 세게 태어난 사람이 선한 사람이다. 만약 악한 사람이 감옥에 갇혔다가 개과천선을 했다면 바로 누르는 힘의 강도가 악에서 선으로 바뀐 것이다. 내 몸 속에도 악과 선이 공존하고 있다. 웬만하면 욕심 부리지 말고 착하게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굳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하지가 않다. 무명 시인에게 눈길이 가는 것은 내 천성이다. 인생이 편하려면 줄을 잘 서야 한다지만 여태껏 단단한 긴 줄보다 허름한 짧은 줄을 택했다. 지금도 금메달보다 은메달이, 동메달보다 4등에게 마음이 더 간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느낀 바 만날 시..

네줄 冊 2022.05.29

지속 가능한 나이듦 - 정희원

노인의학에는 노쇠 지수란 게 있다. 100개의 부속 중에 몇 개가 고장났는지 센 다음 10개가 고장났다면 0.1로 수치화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당연 그 수치는 오른다. 그 속도는 평소 얼마나 건강 관리를 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100 중 50개가 고장 나면 노화지수는 0.5다. 보통 65개가 고장이 나서 노쇠지수가 0.65가 되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 몸의 3분의 2가 고장나면 죽게 된다는 뜻이다. 70 살 동갑내기 두 사람이 건강검진에서 발견된 위암 수술을 위해 걸어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 한 사람은 입원해서 다음날 위암 수술을 받고 며칠 만에 퇴원해서 일상생활로 복귀했다. 다른 한 사람은 수술 다음날부터 섬망 증상이 생겨 밤낮이 바뀌기 시작하더니 거의 먹지를 못하고, 수액을..

네줄 冊 2022.05.17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 박래군

인권운동가 박래군 선생의 책은 꼭 읽으려고 한다. 그는 시종일관 남들이 시선을 주지 않는 곳에 눈길을 준다. 이 책은 아프게 살다 간 사람들의 흔적을 따라 간 눈물 자국이다. 동학농민혁명, 천주교 순교, 진주 형평사운동, 육이오 민간인 학살, 동두천 기지촌 등 상처 받은 사람들의 현장을 찾아 나섰다. 이런 곳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을 리 만무하기에 희미한 흔적을 되살리기 쉽지 않다. 특히 광주대단지 사건 현장과 진주 형평사 운동, 동두천 기지촌 현장이 인상적이다. 흔적 없이 사라졌거나 관심 두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을 초라한 기념물이 더욱 아픈 흔적들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 독립 운동을 한 것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하물며 빈민이나 하층민이었음이 드러날 이런 현장..

네줄 冊 2022.05.15

다음이 온다 - 김태완 시집

공감과 감동은 비슷한 듯하면서 다른 감정이다. 물론 공감이 가야 감동을 할 것이다. 이 시집은 둘 다 해당된다. 내 일방적 주장이다. 김태완 시인은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다. 전업으로 시를 쓰며 먹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이 시인도 전업 작가는 아니다. 아마 전업이었다면 이미 굶어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에는 시 읽는 사람보다 시 쓰는 사람이 더 많다. 안 쓰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하긴 누가 시켜서 쓰는 시라면 얼마나 고역일까. 무슨 인연 때문인지 이 시인의 시집을 모두 읽었다. 는 다섯 번째 시집이다. 낮은 곳을 향한 따뜻한 시선은 첫 번째 시집부터 초지일관이다. 이 시인도 시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팔자를 타고 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집에도 여전히 공감 가는 시가..

네줄 冊 2022.05.12

슬기로운 좌파 생활 - 우석훈

가뜩이나 편 가르기가 심한 시절에 이런 책이 나왔을까 싶지만 참 좋은 책이다. 너네 쪽에서 먼저 편을 갈랐다고 책임을 떠넘기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 편 가르기는 있기 마련이다. 사람 셋만 모여도 의견 일치가 쉽지 않은데 5천만이 넘는 나라에서 편 가르기는 생길 수밖에 없다. 왼쪽 오른쪽뿐 아니라 강남북, 동서로 갈려 있는 게 현실 아닌가. 이런 편 가르기를 무조건 나쁘게만 볼 수 없다. 단지 편이 다르다고 반대만 할 게 아니라 서로 인정할 건 인정하고 싸우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절대 악플을 달지 않는다. 그 악플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연이어 달리는 대댓글로 말꼬리 잡기로 변하기 때문이다. 우석훈의 책은 대부분 읽는다. 우선 이라는 책 제목이 마음에 든다. 이 사람 특유의 맛깔스런 ..

네줄 冊 2022.05.08

저녁 식탁에서 지구를 생각하다 - 제시카 판조

아파트 값 상승 같은 가정 경제에 도움은 안 되지만 지구를 생각하는 삶에는 꼭 필요한 책이다. 라는 책 제목에서 무슨 내용일지 금방 들어온다. 말 그대로 내가 먹는 음식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주고 있다. 평소 관심이 많던 분야라 단숨에 읽었다. 듣기 좋은 꽃 노래도 열 번 들으면 질린다지만 환경 문제는 백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당장 편리함만 쫓다 훗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인가. 저자는 자기가 마주하는 밥상의 식재료가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를 묻게 만든다. 가령 이런 문장이다. . 이 얼마나 명징하게 박히는 글인가. 자기 텃밭에서 기른 농산물로 식사를 해결하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웬만하면 가공식품보다 지역에서 나는 재철 채소 위주의 식사를 하..

네줄 冊 2022.05.03

거꾸로 읽는 세계사 - 유시민

오래전이다. 80년대 후반쯤일까. 유시민이 그리 유명하지 않을 때 이 책을 처음 읽었다. 김진경 선생의 와 함께 이 책은 너무나 인상 깊은 책이었다. 내 의식을 바꾼 책이라고 해도 되겠다. 물론 그때 내가 진보인지 보수인지도 몰랐다. 조선일보도 열심히 읽던 시절이다. 어쨌든 개정판이라고는 해도 두 번 읽는 책이 극히 드문데 요즘 이 책을 읽고 나서 다시 공부가 되었다. 여전히 내 호기심은 9살 아이 같아서 꼬리를 물고 나오는 신간에서 눈길을 뗄 수 없다. 한 번 읽은 책을 모셔두더라도 다시 꺼내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이 책은 처음 읽은 것처럼 흥미롭게 술술 읽힌다. 교과서나 매스컴에서 본 세상이 기본은 아니다. 유시민은 세계 곳곳의 역사를 뒤집어 본 시각으로 독자들의 눈을 새롭게 뜨게 한다. 특히..

네줄 冊 2022.04.25

영원히 사울 레이터

요즘 머리맡에 두고 틈틈히 들춰보는 사진집이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이 대부분이지만 군데군데 만나는 짧은 문구가 눈을 잠시 쉬어 가게 한다. 사울 레이터는 뒤늦게 유명세를 얻은 작가지만 참 시적인 작품을 남겼다. 필름으로만 있고 아직 인쇄되어 발굴되지 않은 사진이 많다고 한다. 이 책에서 실린 사진만으로도 사울 레이터의 세계을 이해하는데 손색이 없다. 사울 레이터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은 장면을 담았다. 자신만의 시각으로 본 풍경은 5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여행지에서 떼로 몰려 다니는 사진가들을 자주 본다. 누구나 찍을 수 있는 풍경을 찍기 위해 전봇대에 늘어선 참새들처럼 같은 장소에서 줄줄이 모여 사진을 찍는다. 과연 자신만의 특색이 나올까. 모든 사진이 작품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스..

네줄 冊 2022.04.22

수치, 인간과 괴물의 마음 - 이창일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저자 이창일은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부끄러운 감정의 원천을 조근조근 파헤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성현들의 가르침도 틈틈히 인용한다. 알면서 외면하는 것이 부끄러움이다. 부끄럽다는 말과 수치스럽다는 말이 대동소이하지만 수치라는 단어가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얼굴을 더 빨갛게 만든다고 할까. 읽으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렸다. 또 노회찬과 박원순도 생각이 났다. 그들은 수치스러움을 죽음과 바꿀 만큼 당신의 인생이 오염되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나는 죽음을 미화하지 않지만 그들의 죽음을 존중한다. 구차한 변명을 하느니 미련 없이, 일본말 좀 쓰면 앗싸리 목숨을 버리는 삶을 택했다. 예전에는 손석희 앵커의 뉴스룸을 봤다. 당일 본방 사수 못하면 나중 유튜브로 꼭 봐야 했던..

네줄 冊 2022.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