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아껴 둔 잠 - 한명희 시집

마루안 2022. 4. 6. 22:33

 

 

 

 

한명희, 같은 이름을 가진 시인이 여럿이다. 동명다인이다. 아마도 한국의 시인 중에서 한명희라는 이름이 가장 많지 싶다. 김철수 이영희 등 교과서에 나오는 이름을 가진 시인도 이 정도로 많지는 않다.

 

여성 시인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이 시집의 저자 한명희 시인은 남성이다. 시 읽는 사람보다 시 쓰는 사람이 더 많은 현실에서 같은 시인인 줄 알았다가 엉뚱한 시집을 만날 때가 있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여기지만 가끔 씁쓸하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유명한 문구를 패러디하자면 내게는 시집은 많고 시간은 없다가 되겠다. 그래서 늘 읽어야 할 시집 목록이 끊임없이 쌓이면서 줄어들지를 않는다. 까다롭게 고르는데도 그렇다.

 

내가 자주 써먹는 낭중지추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숨어 있어도 좋은 시집은 언젠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 시인이 그렇다. 세 번째 시집이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도 진즉에 게으른 내 눈에 띄어 마음에 담아 두고 있던 시인이다.

 

사람 인연같이 시집도 만날 시집은 언젠가 만나고, 못 만날 시집은 평생 가도 스치기만 할 뿐이다. 좋은 사람을 찾아 나설 필요는 없으나 좋은 시집은 자주 찾아나서야 만날 수 있다. 고기 잡는 어부처럼 그물을 촘촘히 쳐야만 한다.

 

그것이 나의 詩網이다. 비싼 고기나 유명한 고기에는 별 관심 없고 선별 조건도 한 가지뿐이다. 좋은 고기, 나쁜 고기가 아닌 내 입에 맞는 고기다. 한가하게 모든 고기를 맛볼 시간이 없다. 일찌기 인생을 낭비하며 살았기에 남은 생은 일모도원이다. 

 

한명희 시인은 세 권의 시집을 냈지만 숨어서 시만 썼던 탓인지 정보가 거의 없다. 시집 날개에 실린 짤막한 등단 약력과 얼굴 사진이 전부다. 사진으로 봐선 칠순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문예지 <딩하돌아>로 아주 늦은 나이에 등단했다. 음식 맛이 좋으면 그 성분이나 원산지가 궁금해지듯 공감 가는 시를 만나면 그 시인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뒷표지에 시인의 행적을 알 수 있는 문구에서 어느 정도 해소한다.

 

 

*잃어버린 웃음을 찾아서 젖은 침대를 지고 살았던 시인을 위무하는 건 여행과 예술이다. 이때의 여행은 낭만이 아니라 정박하지 못한 자의 방랑에 가깝고 음악과 미술은 고독한 자아를 어루만지는 진통제 역할을 한다.

 

어린 나이부터 객지를 떠돌며 부박한 삶을 살았을 시인, 그가 일생 동안 떠돈 산과 바다, 이역의 땅들은 결국 고독과 갈망이 낳은 시인의 또 다른 육친들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시집은 굴곡 많았던 생의 가파른 능선을 기어코 오른 시인 자신에게 바치는 빛의 헌사이자 바람의 비망록이다. *함기석 시인

 

 

좋은 시를 읽게 해준 시인에 대한 궁금증과 아부는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오직 시로 공감할 뿐이다. 인상 깊은 시 몇 구절을 옮긴다. 독서 후기는 가능한 짧게 써야지 했다가도 길어진다. 이것도 병이다.

 

 

*곰곰 생각해 보니 교차로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 늙은 아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이다 서해 어디 무인도가 있는 바다 한가운데로 뛰어 들던 어느 날인 것 같기도 하고

 

*시/ 분리된 기억/ 끝 부문

 

 

*퉁퉁 불은 젖을 움켜쥐고 객지를 떠돌던 한 꽃이 돌아와

부패한 우유 속에 꿀물을 섞어 놓고

언젠가는 날아올 나비를 기다릴 때였던가! 꿈도 없이

 

*시/ 호접몽/ 일부

 

 

*천천히들 날으시게

눈에 들어온 과녁이 곧장 오라, 오라 손짓해도

쉬엄쉬엄 달리시게

 

(.....)

 

이미 시위는 당겨졌다고, 상대의 의중을 꿰뚫는

촉도 눈도 없어, 안개 속에 방향 잃은 날 너무 많았다고 아침부터

술이나 찾는 반지할랑 잊고

 

*시/ 화살/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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