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김수영 전집을 읽은 후 김수영의 글을 이렇게 몰입해서 읽은 적이 없다. 김수영 시인은 1921년에 태어났다. 이 책은 탄생 백주년에 맞춰 나온 책으로 김수영 시인의 엑기스를 모은 책이라 하겠다.
60년이 지난 작품인데도 여전히 세련되게 읽히는 걸 보면 그의 재능을 가늠할 수 있다. 그는 일제시대에 교육을 받았고 연극을 하다 시를 썼다. 육이오 전쟁 때 거제소 포로 수용소에서 2년 넘게 살다 석방된다.
만약 그가 백석처럼 북에 남았다면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 분단으로 인해 많은 분야가 손실을 입었지만 예술계도 아까운 인재들이 묻히거나 단절되는 손실을 입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분단 세금이다.
그의 시는 읽는 맛이 있다. 특히 <구슬픈 육체>, <나의 가족>, <구름의 파수병>, <김일성 만세>, <그 방을 생각하며>, <전향기>, <사랑의 변주곡> 등이 유독 읽는 맛이 있었다. 자주 읽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할까.
스마트폰 세상이 되면서 SNS에서는 한 달 전 소통 단어들이나 트렌드가 구식이 되고 있다. 작년 유행 음식이나 핫플레이스가 소리 없이 시들해져 사라진다. 김수영의 시는 지금 읽어도 구닥다리 냄새가 나지 않는다.
특히 산문에서 쫄깃쫄깃함을 느낀다. 생활의 방편으로 아내가 양계장을 했는데 거기서 벌이지는 양계장 풍경과 시대 상황이 몰입감을 더한다. 글 잘 쓰는 지식인의 전형이라고 할까.
특히 수필 <가냘픈 역사>는 김수영 시인의 사회과학적 소양과 글솜씨가 백미다.
<남이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고 믿어 버리는 따위의 그 습관이라기보다는 생활의 우둔이라고 할까 이러한 것이 어느덧 좋아지게 된 것도 나이가 시키는 일일 것인데, 내가 말하는 나이는 반드시 늙었다는 의미에서 보다는 이런한 경우에는 오히려 청춘의 저항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현명한 독자는 이해할 것이다>.
김수영 시인은 1968년에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글이 한창 무르익었던 47세였다. 시인의 창졸간에 펜을 놓고 떠났지만 이렇게 좋은 글을 남겨 후대의 독자를 감동시킨다. 이래서 인생은 짧아도 예술은 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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