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나쁜 기자들의 위키피디아 - 강병철

마루안 2020. 2. 2. 18:21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가인 앤드류 킨(Andrew Keen)이 쓴 책 <인터넷 원숭이들의 세상>이 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책을 좋아하는 독자와 소통하고 여러 분야의 작가와 교류의 장이 되었던 서점 대신 지금은 소수의 독재적인 거대 온라인 서점이 출판계 동향을 좌우한다고 했다.

독점적 온라인 서점은 독자의 구매 이력이나 인기 작품에 대한 통계정보를 사용해서 독자의 구매력을 유도하기에 인간미가 결여된 세상이 되었다고 했다. 영화가 이미 배급에서 좌우되듯 도서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앤드류 킨은 민주주의라는 보호 속에서 구글, 유튜브, 위키피디아는 거짓과 왜곡, 폭력과 절도가 난무하는 공간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이 웹 2.0 세상을 선도하고 동시에 기존 미디어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뉴미디어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지식보다 정보가 힘을 발휘한다. 아직도 전자책보다 종이책을 선호하고 신문기사도 종이 신문으로 읽어야 더 개운한 나로써는 무척 공감이 갔다.

성능이 날로 발전하는 스마트폰도 내 경우 몇 가지 기능 외에는 아날로그 시대처럼 전화 통화나 문자 기능에 머물러 있다. 일단 뉴스를 몇 꼭지만 읽어도 눈부터 아파 오니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아 급하지 않은 이상 스마트폰은 늘 전화기에 충실하다.

유독 디지털 진화가 더딘 편인데 그렇다고 크게 불편함을 느끼진 않는다. 이 책의 제목인 <나쁜 기자들의 위키피디아>를 말하려다 엉뚱한 쪽으로 흘렀다. 현재 한국 언론의 실상을 너무 잘 표현한 제목이어서 설명이 길어졌다.

현재 한 일간지 기자인 저자가 국문학을 전공한 사람이어서일까. 제목에서부터 분문까지 참 논리적이고 매끄럽게 글을 썼다.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문장으로 독자들을 홀리는 감성 소설만 읽은 독자는 조금 딱딱할 수 있겠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기레기라는 단어의 생성 과정을 설명하면서 기자의 기본을 제시한다. 그중 하나가 기사는 최대한 쉽고 뜻이 분명한 단어로 쓰라고 말한다. 신문 기사는 독자가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실용문이기 때문이란다.

이 책은 기자들이 만들어내 틀 속에 가둔 16개의 단어를 제시하며 그 말이 어떻게 기자에 의해 조작되어 독자에게 전달되는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포퓰리즘>에서 <종북과 적폐>까지 최근 몇 년간 보도된 기사에서 만들어진 단어들이다.

뉴스나 기사의 소비자인 나는 그런 단어에 관심이 많다. 또 웬만해선 나쁜 기자의 선동에 놀아나지 않는다. 오랜 기간 나름 활자 소비자로 살면서 그동안 키운 맷집이 있기 때문이다. 나쁜 기사에 자꾸 맞다 보면 구별해내는 맷집이 생긴다.

이 책이 만병통치는 아닐지라도 읽고 나면 어느 정도 가짜 뉴스를 구별하는 눈이 생긴다. 기레기와 좋은 기자를 구별할 수도 있다. 요즘처럼 무한으로 누리는 언론 자유 시대에 좋은 기사보다 나쁜 기자들이 더 위력을 발휘한다면 문제다.

어쩌면 나쁜 기사보다 질 나쁜 기자가 더 큰 문제인지도 모른다. 뉴스를 읽다 보면 진짜로 질이 나쁜 기자들이 있다. 좋은 책은 읽고 나면 권하고 싶어진다. 흡인력 있는 문장으로 뉴스 읽기의 힘을 길러 주는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