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 이우근 시집

마루안 2019. 12. 29. 19:07

 

 

 

지난 달 늦가을의 햇살을 따라 대구를 여행할 때 만난 시집이다. 내가 시집을 접하는 통로는 각종 문예지에 실린 광고나 신문 주말판에 나오는 신간소식에서다. 문예지에 나오는 광고나 평론가들 추천은 믿지 않으니 나에게는 전혀 약발이 없는 통로다.

그저 호기심 가는 시집이 있으면 제목을 적어 놨다가 나중 서점에서 직접 보고 결정을 한다. 많은 시집을 읽기보다 좋은 시집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이따금 목록에 없는 시집이 서점에 있을 때가 있다. 뜻밖에 좋은 시집을 만나면 횡재하는 기분이다.

이우근 시집은 전혀 정보가 없었다. 2박 3일 대구 여행 끝, 동대구역에 세련된 헌책방이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가듯 보이면 들어간다. 집에서 가져간 시집은 오며 가며 기찻간에서 숙소에서 다 읽었고 읽을거리 하나 있었으면 하던 차다.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실없는 제목이라는 생각과 함께 별 기대 없이 펼쳤는데 첫 시부터 눈에 들어온다. 서울로 돌아 오는 기차에서 이 시집을 읽느라 창밖을 내다볼 겨를이 없었다. 늦가을의 풍경은 단풍 떨어지듯 휙 지나갔다.

 

시와의 인연은 참 묘하다. 내가 찾은 것이 아니라 이 시집이 내게 왔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하긴 이런 통로가 아니었다면 이 시집은 만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시인도 몰랐지만 낯선 출판사에다 서점에서 눈이 띄기도 쉽지 않았을 테니까.

시집에 실린 시는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 눈에 확 들어오는 화려한 문구는 없지만 읽으면서 점점 중독되는 시다. 은은하면서 오래 가는 들꽃 같은 향기가 난다고나 할까. 음미하면서 읽다 보면 그동안 가슴에 품고 있었던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문학을 전공하고도 오랜 기간 다른 곳에서 밥벌이를 했던 시인이다. 지난 날은 미숙하고 어긋났어도 돌아보면 늘 애틋하다. 시인은 쓰는 사람, 나는 낼름 낼름 받아 먹는 독자, 그래서 내쪽으로 기운 편파적 게임 같지만 눈금은 팽팽하다.

'나 여태 살아 있소' 이런 알림도 있다.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이런 저런 양념을 치지 않았는데도 한 그릇의 일품 요리를 마주한 기분이다. 묻혀 있기 아까운 시인이다. 숨어 있다 돌아온 시인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