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거래된 정의 - 이명선, 박상규, 박성철

마루안 2020. 5. 19. 19:12

 

 

 

세상엔 억울한 사람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행여 나도 이런 상황이라면 속절 없이 감옥에 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나만 진실하면 되지, 나만 깨끗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 이 책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음을 일깨운다.

영문도 모른 채 경찰서에 끌려가 감금 당한 채 고문으로 만들어낸 죄목들이 참으로 다양하기도 하다. 간첩 만들기, 강간 살인범 만들기, 해고 노동자 죽음으로 몰아가기 등, 이 땅의 경찰과 사법부가 자기들의 주인인 국민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국민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아도 좋다. 그냥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만 보여주면 된다. 더 나쁜 건 책임을 면하기 위해 아니면 성과를 올리기 위해 경찰이나 국정원이 조사 단계에서 사건을 조작했다고 치자.

기소를 하는 검찰이나 마지막 판결을 하는 사법부도 공정함에 눈을 감는다는 것이다. 감금과 협박과 고문으로 어쩔 수 없이 허위 자백을 했다고 호소를 해도 검찰이나 판사는 요지부동이다. 이 책을 보면 판결을 내린 사람의 실명까지 나온다.

읽으면서 화가 난 것은 그들이 수재 소리를 듣는 엘리트라는 것이다. 노동자들과 민주 투사들이 세상의 부당함에 맞서 피를 흘릴 때 그들은 도서관에서 법전을 외우며 자신의 영달을 위해 공부를 했다. 사법 시험 합격하고 권력자의 눈치를 살피며 줄 서기에 급급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된 판결을 내릴 수 있고 모두가 정의를 위해 싸울 필요는 없다. 애써 편한 길 가고 싶고 출세하고 싶은 것 또한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문제는 권력자에 부역하거나 공정하지 못한 판결을 내리고도 사과는커녕 뻔뻔하게 승승장구한다는 것이다.

퇴임하는 모 대법관에게 신문기자가 인터뷰 요청을 했다. 후배 법관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고 하자 이렇게 말한다. <현직에 있을 때 처신을 바로 하고 바르게 살려고 항상 노력했습니다. 법관은 항상 용기를 가지고 정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자제하고 남을 위해 베풀며 적극적 청렴을 실천해야 합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수사하겠다>는 검사들이 언제나 하는 말과 같다. 가히 존경할 만한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가. 이 책을 읽어 보면 안다. 권력자 똥구멍 빠느라 얼마나 그들이 더럽고 추하고 역겨운지를,,

밑도 끝도 없이 잡아간 생사람을 간첩으로 만들어내는 기술은 영화보다 더하다. 아무리 치밀하게 연구했어도 진실보다 치밀할 수 없기에 거짓은 드러난다. 누가 봐도 고문으로 조작한 사건임을 알 수 있는데도 판사는 억울하다는 호소를 한 귀로 흘리고 판결을 내린다. 

여기서 다룬 대부분의 사건은 재심을 거쳐 무죄를 판결 받았다. 이후 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보상금을 받는다. 나중 국정원이 국가배상금 일부를 토해내라며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을 내서 승소하면서 피해자가 되레 빚쟁이로 몰리는 수난을 당한다.

고문과 감옥 살이로 인해 몸과 영혼이 파괴된 사람들의 인생의 말로는 처참하다. 거래된 정의로 인해 무고한 사람이 핍박받는 사회를 어떻게 봐야 할까. 나는 법정에 서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으나 영화에 보면 존경하는 판사님을 꼭 붙인다. 그 존경 참 저렴하게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