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슬픔도 태도가 된다 - 전영관 시집

마루안 2020. 8. 10. 21:39

 

 

 

예전에 출판사 세계사에서 나오는 시집을 부지런히 읽던 시절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온 시집은 어떤 것을 골라도 마음에 들어오는 시가 많았다. 시가 뭔지도 모르고 읽었던 시절이었는데도 눈에 들어오는 시와 겉도는 시는 구분이 되었다.

 

당시에 나온 대부분의 세계사 시집을 읽었다. 조금씩 시에 눈을 뜨게 해준 출판사라 하는 것이 맞겠다. 지금은 대표가 바꼈는지 아니면 출판 방향이 변했는지 시집 내는 것이 시들해졌다. 하긴 돈 안 되는 시집 출판이기에 무조건 나무랄 수는 없다.

 

전영관 시인은 세계사에서 나온 첫 시집 <바람의 전입신고>를 읽고 알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첫 시집에 마음 주기 쉽지 않은데 제목만으로 눈에 확 들어왔다. 애초에 내가 타고나기를 바람기 가득한 창녀 기질에다 무당처럼 역마살과 바람이 난 신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그는 첫 시집에서부터 마음이 가는 시인이었다. 마음 한쪽에 담고 있었는데 드디어 이번에 세 번째 시집이 나왔다. <슬픔도 태도가 된다>, 역시 제목부터 서정성을 짙게 풍긴다. 내용물 또한 잘 숙성되어 적당한 향기를 품고 가슴에 스며든다.

 

시인은 뇌졸중으로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 시집 전체에 그 이후의 삶을 향한 관조가 온전히 담겼다. 뇌졸중은 참 고약한 병이다. 전조는 있으나 대비에는 대부분 소홀히 하는 병, 주변에 흔히 있지만 나는 피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바라는 병이다.

 

이 병의 후유증은 더 고약해서 좋아지는 경우보다 더 나빠지거나 그대로거나다. 시인은 그걸 딛고 일어섰다. 드문 경우여서 천행이다. 대부분 당해봐야 정신이 번쩍 든다. 물론 곧 망각을 하고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걸을 때마다 걸음의 리듬을 배반하는/ 왼발의 후유증 때문에 재활 의지를 의심받고/ 의료용 긍정을 한 다발씩 처방받았다> -후유증 일부,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초월을 터득하고 싶다/ 건강할 때는 사소하다 흘려버렸던/ 사소한 것들의 목록을 되찾고 싶다> -수면유도제 일부.

 

이런 싯구에서 온전히 시인의 삶에 동화되는 느낌이다. 공감과 떨림을 주는 시란 이런 것이다. 이런 시집을 만나면 에너지가 솟으면서 더욱 살고 싶어진다. 시란 것이 개인의 창작물인 문학이지만 궁극적으로 독자의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목표 아니겠는가.

 

<겪은 자가 가지는 불행에 대한 우월감인 듯/ 눈도 깜박 않는다> -오 분 일부, <오늘 하루 허기진 가장 없기를/ 진눈깨비처럼 아픈 사람은 일어나기를/ 저녁의 등을 가만가만 두드려본다> -무임승차 일부, 인생이 아름답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