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진보적 노인 - 이필재

마루안 2021. 6. 10. 22:18

 

 

 

제목만 보면 팔순을 앞둔 사람의 인생 회고록처럼 들릴 수 있겠다. 저자 이필재는 1958년 개띠다. 요즘 60대를 노인이라고 하기엔 좀 민망하지만 책 제목은 상징적인 표현으로 여긴다. 

 

우선 <진보적 노인>이라는 제목에 딱 꽂혔다. 제목도 좋고 깊이 공감 가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이런 책을 읽으면 저자가 궁금해진다. 이필재는 서울고를 나와 연세대에서 언론학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언론사에 입사한다.

 

기자로 복무하다 2013년 쉰다섯에 정년퇴직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여기까지의 약력을 보면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류의 사람이다. 나는 강성 보수주의자와 타종교를 배척하는 기독교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저자는 기독교인이면서 꽤나 진보적이다. 한국의 기득권 동맹에 기생하는 개신교 목사들이 종교 자영업자로 전락했다고 말한다. 기독교인들이 거품 물고 반발할 말이지만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남을 배려하거나 염치를 아는 사회성은 저절로 길러지지 않는다.

 

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 <심야에 앞에서 여성 혼자 걸어가면 나는 다소 거리를 두고 떨어져 걷는다. 나의 발소리, 어쩌면 가로등 불빛에 일렁이는 나의 그림자에 앞의 여성이 위협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이런 것이 바로 사회성이다.

 

젊어서 진보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것이고, 나이 먹고도 보수가 안 되면 머리가 없는 것이다. 들어서 이미 알고 있는 이 문장 뒤에 이런 말을 붙인다. <난 나이가 들면 오히려 진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진보적 삶은 이 시대의 대세인 신자유주의적 규범에 저항하는 것이다>.

 

나중 나도 저렇게 나이 들 수 있을까. 그는 기자 시절에 촌지를 받지 않는 기자였다. 촌지라는 말보다 뇌물이라 해야겠다. 책에는 구구절절 사연이 나온다. 그 시절 기자 사회는 고스톱, 사우나, 보신탕이 3종 세트였다.

 

저자는 예순네 살이 됐다. 60은 나를 믿을 수 있는 나이란다. 1막 무대에선 내려왔지만 진보적 노인으로서 꿈을 꿀 수 있다. 진보적 노인은 시대 정신에 고민하는 사람으로 약자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적 연대를 지향한다는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젊어도 외모만 젊고 늙은 사고로 사는 사람이 있다. 자기와 맞지 않거나 반대 의견에 꼰대스럽다고 악플을 단다. 스마트폰에만 익숙한 세대의 단면이다. 아무리 세상이 비대면 사회로 변해간다해도 대면으로 어울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진보적 노인이 게으른 나를 각성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