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아픔이 마중하는 세계에서 - 양창모

마루안 2021. 6. 5. 09:26

 

 

 

읽으면 저절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왕진의사 양창모 선생이 쓴 에세이다. 환자가 병원을 찾는 것이 일반적인데 의사가 직접 집으로 찾아가 진료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담담한 필체로 서술하고 있다.

 

몸이 불편해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도 있고 대중교통으로는 접근이 어려운 첩첩산중에 사는 환자도 있다. 그런 환자를 위해 양창모 선생은 직접 방문해 진료를 하고 처방을 내린다. 환자와 가슴으로 소통하는 따뜻한 의사라는 생각이다.

 

왜 그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환자가 방문하는데 이렇게 왕진을 가는 것일까. 대단한 소명 의식 때문이 아니라 가능하면 약자와 함께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10년 이상 동네 의사로 근무한 경험을 살려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와 함께 하고 있다.

 

그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 책에 나온다. 제주에 사는 후배가 전화를 한다. 개업의로 성공한 병원장인데 함께 일하면 어떠냐는 제안이다. 고액 연봉에 솔깃했지만 후배의 제안을 거절한다. 병원 응달에 있는 할머니들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아름다운 문장을 남긴다.

 

<우리는 저 높은 가느다란 거미줄 하나에 온몸을 싣고 이 세상의 어둠 속으로 내려온 한 마리 거미와 같다. 바람에 쉬이 흔들리고 내 무게를 지탱하기에도 너무나 가늘고 여린 거미줄, 내가 만난 우정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 가는 줄들이 씨줄과 날줄로 서로 이어져 아름다운 연대의 그물망이 만들어지면 난 한 마리 거미처럼 내 한 몸 그 위에 놓고 바람 찬 세상을 견딜 수 있으리>.

 

의료와 진료는 다르다. 의료와 진료가 같은 의미가 되어버린 것이 한국 의료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의사에게 자선가가 돼라 할 수는 없으나 진료만을 의료라는 것이야말로 한국 의료의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시발점이다. 

 

한국 의료 소비자가 의사와 직접 통화해서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양창모 선생은 자주 환자의 전화를 받는다. 어쩔 땐 환자가 걱정이 되거나 안부가 궁금하면 직접 전화를 걸기도 한다. 왕진도 드물지만 과연 이런 의사 있을까. 

 

<운이 좋다면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삶이 좁아진다. 몸의 기능이 떨어져 운전도 포기해야 하고 청력도 떨어져 자전거나 차가 등 뒤에서 다가와도 모를 수 있다. 젊을 때의 활동, 등산이나 운동은 점점 불가능해지고 새로운 취미나 모임도 어려워진다. 배우자든 자식이든 친구든 내가 이전의 삶에서 맺은 관계의 힘에 더욱 깊이 의존하면서 늙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늙어가면서 필요한 게 지팡이만은 아닌 것이다>

 

밑줄 긋고 싶은 명문이다. 머리 나쁜 나는 이런 문장을 잊혀지기 전에 옮길 수밖에 없다. 의사들이 사회성이 떨어지기 쉬운데 양창모 선생은 사회 현상에 대한 시각도 예리하고 아주 논리적이다. 공감 가는 부분을 옮긴다.

 

<2020년 의사 파업의 일환으로 의사고시를 거부했던 의대생들에게 정부가 재응시를 허락한 것 때문에 논란이 많다. 재응시가 거부됐던 상황에서도 끝까지 거부되리라고 생각한 의대생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대학병원에 인턴 수급이 되지 않았을 때 어떤 파국적 상황이 벌어지는지 누구보다도 의대생들이 잘 알고 있다.

 

의대생들이 승리를 자신했던 것은 그들 스스로, 의료가 공공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 의사들의 힘은 의료의 공공성에서 나온다. 아무나 의사가 될 수 없어서 의사가 힘이 있는 게 아니다. 모두가 의사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의사들에게 힘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을 이해하는 데는 여러가지가 있다. 같이 술을 마시거나 고스톱을 쳐보지 않아도 그 사람이 걷는 길을 보면 인품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비록 책으로 만났지만 한 사람의 아름다운 인생을 알았다. 비타민 같은 이런 의사가 많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