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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의 힘 - 제나 마치오키

괜찮은 책을 읽었다. 작년 초부터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지구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초기에 마스크를 사기 위해 장사진을 칠 때도 몇달 고생하면 끝나겠지 했으나 여전히 코로나는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런 시국에 딱 어울리는 책이기도 하다. 건강서가 가짜 정보도 많고 그런 정보가 진실인양 인터넷을 떠돌아 다닌다. 사람 본성이 건강에 관한 정보라면 일단 솔깃해지기 때문에 이런 가짜가 더욱 기승을 부린다. 면역력은 인간이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도구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각종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저항하지 못하고 질병에 감영되기 쉽고 감염 후에는 이것을 이겨내지 못해서 치명적인 것이다. 반대로 면역력이 강하면 웬만해선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못하고 설사 감염되었다 해도 물리칠 힘이 있다. 저자는 영국 출생의 여성 ..

네줄 冊 2021.06.20

코로나 평등 - 최영미

코로나 평등 - 최영미 외로운 사람은 더 외로워지고 부자들은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이들은 죽음에 내몰리고 바쁜 사람들은 더 바빠지고 한가한 사람은 지루해 미칠 것 같은 저녁 저희 세상을 만난 새들이 부지런히 펄럭이는데 내 속에 노래는 오래전에 죽었다 너를 보낸 뒤 봄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손톱이 자라는 것도 모르고 거울도 보지 않았지 후회로 막힌 구멍을 뚫고 양치물을 내리면 이를 세 번 닦으면 하루가 갔다 건너편 아파트에 불이 켜지고 저녁상을 차리느라 누군가를 기다리며 켜지는 습관 행복한 사람들은 뭘 해도 행복하다 *시집/ 공항철도/ 이미출판사 어떤 죽음 - 최영미 ​ 너의 창문을 푸르게 물들인 활엽수의 이름을 너는 알려고 하지 않지 그 나무와 저 나무의 잎사귀가 어떻게 다른지 구별하지도 못하지 너의 ..

한줄 詩 2021.06.20

뿌리 독한 한 송이 꽃 - 정기복

뿌리 독한 한 송이 꽃 - 정기복 열다섯 이후 불러보지 못한 아버지 황토밭머리 삭은 수숫대로 누운 채 흙살 풀리는 이른 봄이면 뼈마디 뒤척여 한 송이 꽃 스무 해나 피워 올린다 살 썩히고도 다 하지 못한 사모(思母)의 정이 저리도 뼈저리게 고개 숙인 자줏빛일까 식솔 다 거두지 못한 미련이 이리도 시린 향기일까 죽음을 먹고 자라 살아 있음의 통증을 확인시키는 맨 처음 지상의 슬픈 일 나를 세상에 있게 한 저 빛깔 보노라면 울렁이는 황토, 울렁이는 하늘 가슴마저 울렁이게 하는 꽃의 떨림, 꽃의 분출 살아 모진 바람이었던 아버지 뿌리 독한 꽃 한 송이 뽀-옥 피워 올린다 할미꽃, 몇 광년, 어느 행성에서 온 별똥별이면 나 꽃 피워 올릴 수 있을까? *시집/ 어떤 청혼/ 실천문학사 모란공원, 여름 - 정기복 풀..

한줄 詩 2021.06.20

요절 시인, 트루베르 피티컬을 추억함

요즘 한 시집을 뚫어져라 읽고 있다. 고태관의 시집 이다. 그의 유고 시집이다. 보라색 표지에 쌓인 시들이 처연하다. 그의 시를 읽고 나면 유고 시집이란 선입견을 지우고도 이런 느낌이 들 것이다. 이 시집이 나오기 전까지 피티컬이란 존재를 몰랐다. 알았다 해도 큰 관심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시를 노래하는 랩퍼였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고태관에 관한 기사를 찾다 동영상 하나를 발견했다. 그 영상을 보고 그가 어렸을 때부터 시인이 꿈이었다는 걸 알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고 20년 동안 신춘문예를 투고했다. 번번히 낙선을 하면서도 매년 12월이 되면 신춘문예 투고병이 도졌다. 학교 친구들은 이미 등단을 한 시인이 많았다. 예전 신림동 고시촌에서 매년 낙방을 하면서 늙어 가는 고시 낭인이 생각..

여덟 通 2021.06.19

새의 감정 - 김유미

새의 감정 - 김유미 할머니와 둘이 사는 것은 슬펐다 내 속에 누군가 버린 새가 살고 있다 숨을 쉬기 위해 영화관엘 갔고 가칭 투명이라고 했고 그날의 새는 불투명해서 날아가 버렸다 사람들은 모르는 눈치였지만 팝콘을 주고받은 아르바이트 언니는 눈동자가 그렇게 우울해도 되겠어? 라며 흰 구름을 권유했다 영화를 뒤집어 새를 불러냈다 허공의 줄거리에 초점을 맞추고 다시 얻은 새에게 흰 구름을 떠먹이는데 노랗게 물들인 내 머리카락이 자랐다 주머니 속 내 영혼을 만지작거리면 캐러멜처럼 끈적이는 손바닥 할머니 곁에서 꿈이라고 애교 떨고 화분 곁에서 예쁘지 예쁘지 속삭이다가 내 곁에서 거품이라고 풀이 죽기도 했다 벼랑을 다른 이름으로 바꾼다면 굳어 버린 날개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할머니 안 들리는 척 창밖으로 새를 날..

한줄 詩 2021.06.19

저녁의 후회 - 박주하

저녁의 후회 - 박주하 ​ 꽃을 사랑한다면 끔찍한 마음은 그 꽃 밑에 누워야 할 일 그러나 이미 살구꽃 핀 저녁들을 후회하던 참, 골목마다 헐값으로 꿈을 밀어 넣고 나자 모든 것이 사소하고 충분했으며 비에 젖을수록 맨발이 딱딱해진다 위로는 습관이기에 슬그머니 손을 놓고 돌아서지만 물 깊어 건너지 못하는 다리는 결코 당신의 불운이 아니다 마음을 다쳐 몸 안에 갇혔으니 입 벌린 고요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난다 캄캄하고 작아진 마음들이 밀려드는 저녁 어둠을 핑계 삼아 질기게 불안을 껴안으니 불행을 너무 쉽게 불태우고 난 기분, 소리 없이 혼자 뜨거워진 심장을 버리고 흰 새가 떠나간다 *시집/ 없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걷는사람 불가피한 저녁 - 박주하 변심의 기미를 읽고 울컥 몸이 상해 버렸지 절반의 슬픔과 절..

한줄 詩 2021.06.19

아날로그는 슬픔의 방식을 눈물로 바꾸는 거예요 - 이기영

아날로그는 슬픔의 방식을 눈물로 바꾸는 거예요 - 이기영 흐느낌과 어깨의 떨림을 돋보기처럼 볼록하게 터질 듯 위험수위를 견디는 눈물은. 서툰 방향 사이에서 끊임없이 점멸하는 신호등을 건너 마침내 굳게 선 결심을 따라가는 눈물은, 좋은데이를 몇 번이나 지나야 쓸쓸한 위장을 모두 속일 수 있는지 내게 주어진 슬픔만큼만 탕진하고 나면 까마득하게 사라지는지 명랑하게 잊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온 힘을 들여 밀어내는데도 계속해서 또 다른 감정이 생겨나는 표정 속에 뒤섞이고 마는 이 완벽한 한 방울의 통증, 아, 무섭도록 일반적이다 *시집/ 나는 어제처럼 말하고 너는 내일처럼 묻지/ 걷는사람 유월의 숲 - 이기영 너무 멀어 몸을 던질 수조차 없던 시퍼런 바닷물 속에 서둘러 반짝거리고 알아서 일렁이던 눈빛이 있었..

한줄 詩 2021.06.16

트로트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 장유정

어릴 때 누이가 즐겨 부른 탓에 트로트를 좋아한다. 트로트는 말 그대로 유행가였다. 누이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트로트를 배웠을 것이다. 장독대에 올라가 숟가락을 마이크 삼아 이미자와 하춘화의 노래를 구슬프게 불렀다. 이 책은 한국 트로트 역사를 기술한 책이다. 클래식에 관한 책은 많아도 대중음악을 연구한 책은 드문데 꽤 흥미롭게 읽었다. 내 혈관에 트로트 선율이 흐르고 있기에 많은 부분 공감을 하면서도 왜 하필 트로트라는 이름으로 고정이 되었을까에는 늘 불만이었다. 어릴 때 태풍과 함께 퍼붓는 비에 홍수가 난 적이 있다. 동네 담벼락이 무너지고 개울이 터지고 감나무가 부러지고 피해가 막심한데 마을 앞 수문은 멀쩡했다. 그때 동네 어른들 하는 말이 일정 때 왜놈들이 만든 수문이어서 이 물난리에..

네줄 冊 2021.06.15

슬픔을 줄이는 방법 - 천양희

슬픔을 줄이는 방법 - 천양희 빛의 산란으로 무지개가 생긴다면 사람들은 자기만의 무지개를 보기 위해 비를 맞는 것일까 빗속에 멈춰 있는 기차처럼 슬퍼 보이는 것은 없다고 까닭 모를 괴로움이 가장 큰 고통이라고 시인 몇은 말하지만 모르는 소리 마라 오죽하면 슬픔을 줄이는 방법으로 첫째인 것은 비 맞는 일이라고 나는 말할까 젖는 일보다 더 외로운 형벌은 없어서 눈이 녹으면 비가 되는 것이라던 선배의 말이 오늘은 옳았다 빗소리에 몸을 기댄 채 오늘 밤 나는 울 수 있다 전력으로 *시집/ 지독히 다행한/ 창비 견디다 - 천양희 ​ 울대가 없어 울지 못하는 황새와 눈이 늘 젖어 있어 따로 울지 않는 낙타와 일생에 단 한번 울다 죽는 가시나무새와 백년에 단 한번 꽃 피우는 용설란과 한 꽃대에 삼천 송이 꽃을 피우다..

한줄 詩 2021.06.15

살만 투어 그림들, Salman Toor Paintings

The Singers, 2019. Oil on canvas, 35 x 33 inches 코로나 때문에 여행이나 항공 업계가 직격탄을 맞았다. 그에 못지 않게 공연이나 미술계 업종의 타격이 크다. 나부터 여행은커녕 극장이나 전시장 나들이 끊은 지가 오래다. 방역 수칙의 제1 철칙은 가능한 사람 몰리는 곳은 피하고 볼 일이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던 작년(2020) 가을,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

여덟 通 2021.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