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코로나 평등 - 최영미

마루안 2021. 6. 20. 19:33

 

 

코로나 평등 - 최영미

 

 

외로운 사람은 더 외로워지고

부자들은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이들은 죽음에 내몰리고

바쁜 사람들은 더 바빠지고

한가한 사람은 지루해 미칠 것 같은 저녁

 

저희 세상을 만난 새들이

부지런히 펄럭이는데

내 속에 노래는 오래전에 죽었다

너를 보낸 뒤

 

봄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손톱이 자라는 것도 모르고

거울도 보지 않았지

후회로 막힌 구멍을 뚫고

양치물을 내리면

이를 세 번 닦으면 하루가 갔다

 

건너편 아파트에 불이 켜지고

저녁상을 차리느라

누군가를 기다리며 켜지는 습관

 

행복한 사람들은 뭘 해도 행복하다

 

 

*시집/ 공항철도/ 이미출판사

 

 

 

 

 

 

어떤 죽음 - 최영미


너의 창문을 푸르게 물들인 활엽수의 이름을
너는 알려고 하지 않지
그 나무와 저 나무의 잎사귀가 어떻게 다른지
구별하지도 못하지
너의 하늘을 날아오르는,
발코니에 앉아 널 빤히 바라보는
새가 종달새인지 까치인지
궁금해 속을 끓이지도 않지

너는 꽃을 보지도 않고
꽃집을 지나가지

횡단보도 앞에서 문득 솟아오른 문장을 잡으려
수첩을 꺼내지도 않지
네 혀를 날뛰게 하는 음식의 이름만
간신히 기억하지

길바닥에 앉아 파를 다듬는 할머니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아이에게 웃어주지도
이름이 뭐냐고 실없이 물어보지도 않지
아침에 빠져나온 구멍으로 어서 들어가고파
숨을 헐떡거리지
침묵뿐인 문을 열어 젖히려고

 

 

 

 

# 최영미 시인은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창작과비평>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서른, 잔치는 끝났다>, <꿈의 페달을 밟고>, <돼지들에게>, <도착하지 않는 삶>, <이미 뜨거운 것들>, <다시 오지 않는 것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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