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0호 - 윤석정 오십 살 영호 씨는 공허 속의 고물, 버린 짐짝 같은 흉물이 됐다 주물공장이 헛물켜던 때부터였다 영호 씨의 관절이 움직였던 모터가 멈췄다 모터에서 번쩍 수백만 볼트의 불꽃이 터졌다 사랑의 기억장치가 리셋됐다 영호 씨 모터를 누볐던 기름이 제자리에 멈췄다 기름 한 방울 한 방울 가슴 언저리로 새어 나왔고 영호 씨는 급속도로 녹슬었다 최신의 모터를 장착했던 첨단의 과거 영호 씨는 사랑의 형식을 반복하여 생산했고 주물공장은 모든 형식에는 유행이 있다고 했다 유행이 지나면 다른 유행으로 대체되고 또 다른 영호 씨로 교체되는 시스템 속에서 영호 씨의 기억장치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영호 씨는 반복의 형식을 반복할 뿐 반복되지 않는 사랑의 형식이 주입된 적이 없었다 사랑을 포기한 사람처럼 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