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저녁 비 - 황동규
늦가을 저녁 비 - 황동규 잿빛 소리로 공기를 적시며 비 내리는 저녁 늦 산책에서 돌아오다 만난 이층집 미니 뜰 서로 기대거나 넘어져 누운 줄기들 속에 혼자 고개 쳐들고 서 있는, 안개처럼 자욱이 내리는 잿빛 음성에 붉은 입술 붉은 혀 내밀고 있는 장미 한 송이. 어느 결에 빗소리에 침이 마른다. 혀와 음성, 붉은색과 잿빛이 입 마주대고 서로를 맛보고 맛보여주고 있는가? 무슨 맛인진 모르지만 서로가 한 몸이 되겠다고 글썽글썽 맛보고 맛보여주고 있는가? 어느샌가 어두워져 소리밖에 뵈지 않아도. 세상에 헛발질해본 사람이면 알지, 저 소리, 밖으로 내놓지 않고 마냥 안으로 끌어만 당기는 저 음성, '이 저녁 견딜 만하신가?' *시집, 겨울밤 0시 5분, 현대문학 11월의 벼랑 - 황동규 어디에고 달라붙어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