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립다는 말 - 조찬용

마루안 2017. 12. 3. 21:30

 

 

그립다는 말 - 조찬용

 

 

이순이 가까운 시절

한때 찔레꽃같이 피었다 시든 그 유장한 길들의 몸부림을 생각하면

그립지 않은 것들이 없다

살아온 게 아니고 밥벌이에 목을 매 살아진 게 아니었느냐고 말을 해도

이젠 낯부끄러울 것 없는 이유와 덤덤해진 변명

아물아  흘러온 인생아,

남은 시절은 또 얼마나 그리울 것이냐

 

 

*시집,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북랜드

 

 

 

 

 

 

소풍 - 조찬용

 

 

아이들이 성벽 길을 줄지어 소풍을 간다

두 노인네 느티나무 아래에서 장기를 두며 아이들을 바라본다

거쳐 온 인생과

거쳐 가는 인생 사이 공간의 담장 벽

덜렁 둘이 마주앉은 황혼의 길에서 장기를 둔다

 

그땐 우리도 많이 설레었지

그랬었지

잠을 이루지 못해도 아침은 환했었지

하루하루 덮고 나면 이리 지나온 일인 것을 말이네

꿈길을 걸어온 셈이지

저 아이들도 오늘 꿈길을 걸어간 걸 알기나 할까

 

아이들 가뭇 사라지고 남은 빈 공터

뒤뜸뒤뜸 한낮 두 노인의 소풍도 짧기만 하다.

 

 

 

 

# 조찬용 시인은 전북 부안 출생으로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시인정신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국어 시간에 북어국을 만난다>,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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