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줄 哀

노숙자의 가을

마루안 2017. 12. 2. 20:58

 

 

 

지난 봄부터였던가. 정확하게 기억은 못 하겠다. 어쨌든 꽤 오래 그를 지켜봤다. 지켜 본 게 아니라 그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매일 그곳을 지나간 것은 아니다. 지나 갈 때마다 있었다는 것은 그가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켰다는 얘기다.

 

그를 볼 때면 잠을 자거나 컵라면을 먹거나 신문을 보거나였다. 언제는 수염이 덥수록한 부시시한 모습이었다가 어느 날은 말끔한 차림일 때도 있었다. 컵라면을 먹는 걸 보면 그이 만의 생존 방식이 있는 모양이다. 그는 풍경이 아니라 각인이었다.

 

비교적 포근했던 가을 날씨가 며칠 사이 겨올로 변했다. 곧 닥칠 겨울이 걱정 없는지 평온하게 신문을 읽고 있다. 오늘은 저 신문으로 하루를 묵히기 알맞을 것이다. 모쪼록 이 겨울이 그를 비껴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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