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그리움 없인 저 별 내 가슴에 닿지 못한다 - 김완하

마루안 2017. 12. 4. 20:42



그리움 없인 저 별 내 가슴에 닿지 못한다 - 김완하


 
네가 빛나기 위해서
수억의 날이 필요했다는 걸 나는 안다
이 밤 차가운 미루나무 가지 사이
아픈 가슴을 깨물며
눈부신 고통으로 차 오르는 너,


믿음 없인 별 하나 떠오르지 않으리
그리움 없인 저 별 내 가슴에 닿지 못하고
기다림 없는 들판에서는
발목 젖은 풀 뿌리 하나에도
별빛 다가와 안기지 않으리


어둠 속 무수히 흩어지는 발자국
별 하나 가슴에 새기고 돌아가
고단한 하루에 빗장을 지를 때
지친 풀잎 허리 기댄 언덕 위로
너는 꺼지지 않는 등을 내다 건다


너와 내가 하나의 강으로 닿아 흐르기까지
수천의 날이 또 필요하리라
이 밤 네가 빛나기 위해
수억의 어둠을 뜬눈으로 삼켜야 했듯
그 눈물 어리어 흘러가는 강을 나는 본다



*시집, 그리움 없인 저 별 내 가슴에 닿지 못한다, 문학사상사

 

 

 




 

생의 온기 - 김완하

 


더러는 아픈 일이겠지만
가진 것 없이 한겨울 지낸다는 것
그 얼마나 당당한 일인가
스스로를 버린다는 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몰아치는 눈발 속에서
눈 씻고 일어서는 빈 벌판을 보아라
참한 풀잎들 말라 꺾이고
홀로의 목마름 속
뿌리로 몰린 생의 온기,
함박눈 쌓이며 묻혀 가는 겨울잠이여
내가 너에게 건넬 수 있는 약속도
거짓일 수밖에 없는 오늘
우리 두 손을 눈 속에 파묻고
몇 줌 눈이야 체온으로 녹이겠지만
땅에 박힌 겨울 칼날이야 녹슬게 할 수 있겠는가
온 벌판 뒤덮고 빛나는 눈발이
가진 건 오직 한줌 물일 뿐이리
그러나, 보아라
땅 밑 어둠 씻어 내리는 물소리에 젖어
그 안에서 풀뿌리들이 굵어짐을
잠시 서릿발 아래 버티며
끝끝내 일어설 힘 모아 누웠거늘
자신을 버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당당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