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폐차 - 서영택

마루안 2018. 1. 5. 18:44

 

 

폐차 - 서영택


공터에 누가 세워 놓았을까
웅크리고 앉은
자동차가 멈춰 있다
나사가 빠진 검은 폐타이어
어둠 속 물컹한
아, 죽음의 혓자국들

헐렁해진 늙은 몸이
앞만 보고 달려가
바람 빠진 맨살이 닳고 닳았다
제 몸의 헐거움을 보고 있을까
저승도 돈 없으면 못 가는 세상

산자락 외곽
산 밑 폐차 살이가
벌써 저승을 갔을 몸인데
자동차세가 밀려서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지 못했다
살아있는 명부가 구천이 아닌
구청에서 떠돈다


*시집, 현동 381번지, 한국문연

 

 

 

 

 

 

아름다운 불륜의 사회 - 서영택


1
키가 작고 못생긴 나는 늘 왕따였다 가방끈이 짧아 취직도 못했고 운전 기술을 배워 택시 운전으로 먹고 살았다 시간마다 뒷좌석에 손님들이 바뀌는 동안 흥분한 손님들의 고성이 들렸다 사회 부조리와 썩은 제도를 푸념처럼 늘어 놓았다 맞아요 맞아, 추임새를 놓는 장단에 운전석과 뒷좌석 손님 자리 묘한 동지심이 오갔다 맞아요 맞아 호응 한마디면 손님들은 잔돈을 받지 않았다 천 원짜리가, 혹은 만 원짜리가 주어졌다

2
그들의 썩은 사회가 착한 나의 주머니를 불려 주었다 손님들의 입맛대로 씹혀져서 목구멍으로 내장을 거친 썩은 사회가 깨끗이 정화될지 알 수 없다 더러 욕정에 눈멀은 불륜 커플의 농익은 말들이 귀에 맴돌기도 한다 아름다운 불륜의 사회, 불륜을 하는 동안 손님들은 한껏 친절하다 농익은 상상력이 손님을 친절하게 한다 이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패배자들의 넋두리에 비례한 나의 친절한 응대에 지폐가 늘어간다 가방끈이 짧아도 은행은 가깝다

가방끈이 짦은 나에게 택시 운전은 천직이다 사회의 부조리와 썩은 제도와 불륜이 나를 살게 한다 그들의 썩은 사회를 제도를 불륜을 사랑한다 가볍던 나의 주머니가 부풀려지고 가정경제도 넉넉하다 아내의 웃음소리가 커지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음식이 맛있는 가게를 검색하고 외식도 한다


 


# 서영택 시인은 경남 창원 출생으로 호서대학교 경영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1년 <시산맥>으로 등단했다. <현동 381번지>가 첫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