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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향련 - 울지 마라 가야금아

울어 울어 우는구나 가야금 열두 줄이 한 줄을 퉁겨 보니 님 얼굴 떠오르고 두 줄을 퉁겨 보니 님의 모습 그립구나 울지 마라 가야금아 너마저 날 울리면 애끓는 이내 간장 굽이 굽이 눈물진다 꿈아 꿈아 깨지 마라 푸른 꿈 나의 꿈아 세 줄을 퉁겨 보니 님의 입술 새로웁고 열두 줄 퉁겨 보니 설움만이 복받치네 울지 마라 가야금아 너마저 날 울리면 설마 설마 기다리는 내 청춘이 서글프다 #가끔 이 곡을 듣는다. 한 번 들으면 서너 번은 반복해서 듣는다. 클래식이든 국악이든 가요든 여러 음악을 듣기보다 마음 닿는 곡을 자주 듣는 편이다. 지독한 편식이다. 1944년 출생인 안향련은 하늘이 내린 목구성이란 찬사와 함께 요즘으로치면 1970년대 국악계의 프리마 돈나이자 아이돌이었다. 서른 일곱에 자살로 생을 마감해..

두줄 音 2018.01.26

흰 모자 속의 마르크스 - 주창윤

흰 모자 속의 마르크스 - 주창윤 내 설운 잠이 가끔씩 이유 없이 들러서 잠드는 마르크스 묘지원으로 귀 닳고 눈 다친 안개만이 자욱하다 그대 또한 엷은 잠에서 자주 깨어나 역사의 진흙 구덩이 속을 헤매기도 하겠지. 아침 호텔 종업원에게 하이게이트 묘지원 가는 길을 물었을 때 "거기 가겠다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저도 못 가보았는데 찾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요." 종업원의 말처럼, 몇 번이고 길을 물을 때마다 사람들은 각각 다른 방향을 알려줘서 나 역시 이 언덕 저 언덕을 헤매기도 했지. 돌이켜보면 역사는 우리가 세들어 사는 것. 역사가 그대의 평가처럼 이성의 몫이라면 그 얼마나 따분한 일이겠나 역사는 그대의 묘지원 가는 길처럼 사잇길로만 비껴간다 그러나 우리는 세들어 살면서 주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마..

한줄 詩 2018.01.25

좌표의 소멸 - 김익진

좌표의 소멸 - 김익진 중심은 모든 곳에 있으나 경계는 어느 곳에도 없다 신은 어디에나 있으나, 알아볼 수가 없다 길 위에서 좌표를 잃었다 몸은 나그네의 관성좌표 시간은 신에게 가는 지름길, 병은 세상 밖으로 가는 차표이다 좌표의 소멸은 소원을 이루는 것, 자유를 찾아 나서는 길이다 우주 바다엔 파도가 없다 얼어야 만나는 강의 기다림도 없다 발을 들어 하늘을 유인하고, 구기는 시빗거리도 없다 소멸은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신과의 만남이고 영혼의 자유를 얻는 것이다 *시집/ 기하학적 고독/ 문학의전당 태양이 설정한 대로 - 김익진 태양이 설정한 대로 시간을 기록하며 지나간 인내심에 자부심을 갖는다 현재에 머물 기회가 다시는 없으니 차가웠던 마음은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는 장미로 ..

한줄 詩 2018.01.25

별빛이 늙은 몸에 걸려 꿈꾼다 - 김윤배

별빛이 늙은 몸에 걸려 꿈꾼다 - 김윤배 모든 존재는 별빛에 걸려 꿈꾼다 밤의 강물, 새벽 산길 별빛에 걸려 꿈꾸고 말들의 누더기, 무겁게 휘어진 생애 별빛에 걸려 꿈꾼다 모든 존재에 꿈이 있다면 존재로 드는 길이 있을 것이다 모든 존재에 길이 있다면 길로 드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길 위에 물끄러미 서 있는 늙은 사람 하나 있다 늙은 사람은 별빛에 걸려 꿈꾸지 않는다 별빛이 그의 늙은 몸에 걸려 꿈꾼다 *시집, 슬프도록 비천하고 슬프도록 당당한, 세계사 머물고 떠남이 소리 속 피멍울 - 김윤배 -함동정월 16 소리 있는 곳이면 그곳에 나 있어 댓잎 사운대는 소리 속이거나 달빛 부서져 삐걱이는 문 소리 속이거나 풍장의 뼈마디 치고 나가는 떠돌이 광대의 휘파람소리 속이거나 내 젓대 머물러 아린 구멍 열고 닫..

한줄 詩 2018.01.25

시간의 그늘 - 이용헌

시간의 그늘 - 이용헌 ​ ​ 초사흘 달빛과 초나흘 달빛의 차이 열여드레 별빛과 열아흐레 별빛의 차이 달 내돋은 자리와 별 비낀 자리, 그 하루만큼의 변이 혹은 달빛과 별빛, 빛깔과 색깔, 그 한 낱내만큼의 간극 그 간극에 담겨 있는 티끌만큼의 순간 순간은 시간이 되고 시간은 빛이 되고 빛은 또 색이라는 무량수불 같은 묘법 하여 색은 공이요 공은 다시 한 줌의 빈 그늘 끝내는 비울 것도 없고 지울 것도 없는 저 시공의 눈자위는 얼마나 깊은 것이냐 누천 밤의 달빛으로 허공을 이고 서 있는 청평사(淸平寺) 앞마당 잣나무 일주문 아래 시간은 잎바늘 사이만큼 촘촘하게 슬픔의 그늘을 늘려가고 있다 ​ ​ *시집, 점자로 기록한 천문서, 천년의시작 오수(午睡) - 이용헌 ​ ​ 진눈깨비 날리는 중부시장, 명란젓을 ..

한줄 詩 2018.01.25

사북역에서 - 박승민

사북역에서 - 박승민 광산도 문을 닫고 사북에 내리는 손님은 없었다 일시 아동 보호소에 아이 맡기고 나온 미혼모처럼 철지난 코스모스들 나란히 서서 먼 곳을 보고 있었다 나도 딴 곳을 보고 있었다 한때 네 마음의 징검다리를 밟고 건넜던 짧은 강이 있었다 그 강의 가는 지류가 파란 실 하늘처럼 가끔 내 가슴으로 흘러갔다 그런 날은 독한 술 한 잔 간절했지만 참기로 했다 세들어 사는 납빛 하늘 위로 막 눈 오려 하고 나는 또 다른 간이역으로 떠나려 한다 기차는 지나간 바퀴의 기억으로만 움직인다 *시집, 지붕의 등뼈, 푸른사상사, 2011 붉은 육손이 - 박승민 -도계에서 강바닥의 돌들이 무연탄을 닮아 하루도 맑은 날이 없었다. 그 강물 위로 생활을 너무 일찍 배운 붉은 손바닥들이 덤덤하게 떨어지고 있다. 찬 ..

한줄 詩 2018.01.25

새들은 무조건 고향을 떠야, 고향이다 - 서규정

새들은 무조건 고향을 떠야, 고향이다 - 서규정 햇볕이 아무리 길어도 사각에까진 못 쳐들어온다 밀린 월세를 봉투에 넣어놓고 세 모녀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엊그젠 또 기업인이 억울하다며 북한산에서 목을 매달았다 자살이 그렇게 쉬우면 어떻게 어렵게 사나 시골에서 오래 살다 보면 제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고 농약을 먹고 멀리 떠난 장정들 더러 있었다, 대책이 없어야 혼자만의 사랑이겠거니 죽는다는 걸 군대 가는 것쯤으로 알았나 보다 지평선 위에 수평선을 포갠 일등병 계급장을 달고 간간이 휴가도 나올 줄 알았었나 보다, 더 더러워지기 전에 깨끗이 떠난 청춘들의 사례는 그럭저럭 인정할 수가 있었다 한번 가면 그뿐인 그곳을 조류학자들은 새들의 고장이라고 학술지에 발표도 하지만 새들은 고향이 너무 많다 앉았다 뜨면..

한줄 詩 2018.01.25

겨울, 암자 가던 길 - 남덕현

겨울, 암자 가던 길 - 남덕현 달빛은 밝아도 온기가 없어 환한 눈길 위 비석 그림자 서늘한 이정표 여기가 중간 어디쯤이랴 개 짖는 소리 밑에서 올라오고 새벽 향내음 아래로 내려간다 산밭 무 뽑은 자리 어둠이 움푹 더 짙다 뭉클하여라 운명이 사물처럼 보이는 밤 *시집/ 유랑/ 노마드북스 유랑 - 남덕현 어둠 속으로 길이 길을 접으면 외길에서도 나는 길을 잃어 힘없는 별빛이나 기다렸다가 무릎이 쓸쓸히 다 울 때까지 마저 떠돌아야지 # 남덕현은 1966년 대전 출생으로 대전 보문고 및 서강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산문집 , 이 있고 이 첫 시집이다.

한줄 詩 2018.01.24

남자는 털고 여자는 닦고 - 심봉석

다소 민망한 제목과는 달리 현직 비뇨기과 의사의 유용한 의학 상식이 알차게 실렸다. 치질 등 항문 질환과 함께 생식기와 연관된 비뇨기 질환은 드러내 놓고 말하기 민망한 부분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항문 질환과 비뇨기에 문제가 생겨 병원을 찾고 있다. 50대 들어 건강에 관한 책이 눈에 들어온다. 그전에는 되레 건강 챙기는 사람을 비웃었다. 얼마나 천년 만년 살려고 저럴까 속으로 비웃었다. 워낙 건강 체질이기는 했어도 세월은 속일 수 없는지 몸에 조금씩 잔고장이 생기면서 이런 책도 손에 잡게 된다. 작년 들어선가. 언젠가 오줌발이 약해진 걸 느낀다. 비아그라 먹을 정도는 아니고 발기력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밤에 자다 일어나 화장실을 가게 된다. 전에는 없던 일이다.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

네줄 冊 2018.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