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정처없는 건들거림이여 - 허수경

마루안 2018. 5. 31. 18:58

 

 

정처없는 건들거림이여 - 허수경


저 풀들이 저 나무잎들이 건들거린다
더불어 바람도.
바람도 건들거리며 정처없이
또 어디론가를......

넌 이미 봄을 살았더냐
다 받아내며 아픈 저 정처없는 건들거림

난 이미 불량해서 휘파람 휘익
까딱거리며 내 접면인 세계도 이미 불량해서 휘이익

미간을 오므려 가늘게 저 해는 가늘고
비춰내는 것들도 이미 둥글게 가늘어져

둥글게 휜 길에서 불량하게
아픈 저 정처없는 건들거림
더불어 바람도
또 어디론가를.....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

 

 

 

 



울고 있는 가수 - 허수경


가수는 노래하고 세월은 흐른다
사랑아, 가끔 날 위해 울 수 있었니
그러나 울 수 있었던 날들의 따뜻함
나도 한때 하릴없이 죽지는 않겠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 돌담에 기대
햇살처럼 번진 적도 있었다네
맹세는 따뜻함처럼 우리를 배반했으나
우는 철새의 애처러움
우우 애처러움을 타는 마음들
우우 마음들이 가여워라
마음을 빠져나온 마음이 마음에게로 가기 위해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일들은 나를 울게 한다
울 수 있음의 따뜻했음
사랑아, 너도 젖었니
감추어두었던 단 하나, 그리움의 입구도 젖었니
잃어버린 사랑조차 나를 떠난다
무정하니 세월아,
저 사랑의 찬가



 


# 허수경 시인은 1964년 경남 진주 출생으로 경상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 혼자 가는 먼 길>,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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