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건배 - 윤석산

마루안 2018. 5. 29. 18:58



건배 - 尹錫山



머리가 희끗희끗 이제 노년에 접어든 동창들이
어린 아이들마냥 모였다.
건배, 건배사는 무얼로 할까.
'위하여'는 너무 흔하고, '개나발'은 너무 고전적이고
누군가 제의를 했다.
'세우자! 오래오래'
와르르 웃음이 터졌다.
한 쪽에서 누군가 혼자 씨부렁거렸다.
'오래오래는 무슨, 세우자! 잠시라도'
건배, 건배, 건배
우리의 건재하지 못한 건재를 위하여
머리가 희끗희끗, 잠시라도 우리는 당당하고 싶을 뿐이다.



*尹錫山 시집, 나는 지금 운전중, 푸른사상








쓸쓸한 생각 - 윤석산



일을 보면서 옆에 걸린 두루마리 휴지를 풀어 뒷간종이를 마련한다. 휴지는 한 6에서 7센티마다 마디를 이루고 잘려나갈 선을 이루고 있다. 몇 마디를 잘라 한 번 쓸 것을 마련할까? 네 마디는 다소 모자랄 듯하고, 다섯 마디는 조금 남을 듯하구나. 네 마디와 다섯 마디에서 잠시 생각을 한다.


출출한 점심시간 중국집 메뉴를 들고 들여다본다. 짜장면과 짬뽕, 오늘의 입맛은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을까. 짜장면의 달콤함과 짬뽕의 얼큰함이 모두 유혹을 한다. 각종 요리가 즐비하게 나열된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달콤함과 얼큰함 그 사이에서 잠시 생각을 한다.


부음을 전해 듣는다. 잠시 지갑의 돈을 헤아린다. 몇만 원과 몇만 원 사이, 오늘 돌아가신 이 분은 몇만 원에 해당될까. 상주는 과연 몇 푼만큼의 관계를 이루고 있는가. 옷을 차려입고, 검정 넥타이를 매면서 언뜻언뜻 거울로 비춰보이는 생각의 쓸쓸함, 거울 안과 밖, 잠시 생각을 고쳐 맨다.




'한줄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독 - 한우진  (0) 2018.05.30
지나온 길들에 관한 - 강영환  (0) 2018.05.29
고독한 감각 - 서상만  (0) 2018.05.29
적당한 때 - 임곤택  (0) 2018.05.29
살아 있는 구간 - 박승민  (0) 2018.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