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지나온 길들에 관한 - 강영환

마루안 2018. 5. 29. 19:19



지나온 길들에 관한 - 강영환



아침 거울 안에서 도피한 뒤 저물녘에도 그랬다
꼬리를 물고 찾아오는 날선 시선이 거울 속 아니라도 등 뒤에서 불을 켰다
머리카락도 물러나고 피부에 남은 물기도 마른 그늘 속으로 피해갔다
길을 쓸고 지나간 청소부가 흐트러진 발자국을 남기고 갔다
남들처럼 지나온 길들에 관한 풀잎 또는 돌부리에 채인 바퀴자국은 남지 않았다
꺾이고 낮아지기만 하던 숱한 눈을 피하고 싶어 거울 속 보이지 않는 곳으로 키를 낮췄다
그러나 몸에 남아있는 흔적은 하얗고 눈치밖에 남지 않은 강변 자작나무 이파리
불혹의 가장자리에 떨어진 낯선 이름처럼 거울 속으로 가고 싶은 눈이 있을 뿐
몸이 먼저 쏠리는 도피를 달래지 못한다



*시집, 집산 푸른 잿빛, 책펴냄열린시








훈장처럼 - 강영환



잘 익은 열매, 빛나는 말을 가슴에 달고
산다 눈치 없이 음주에 길 잃지 않고
잘 찾아온 집에 굽 도는 골목길을
뱀처럼 어깨에 걸어두고 기름진 음식을 먹고
체하지 않았기에 살 발라낸 생선뼈를
머리에 꽂았다 지워지지 않게
지리산 종주를 별 탈 없이 마쳤기에
천왕봉을 허리춤에 매달아놓고
어두운 골목 말 잘하는 개를
옷섶에 소리 내는 풍경으로 꼽아
어깨에서부터 허리까지 멋진 꾸밈으로
무거운 길을 돋을새김으로 보며 산다
자랑으로 넘쳐 짓눌린 몸이 출렁거리다
벼랑 아래 찍혀 구부러진 파도
요란한 물무늬 화석이 산다





# 무척 과묵했던 친구 수다를 듣다 생각했다. 며칠전 변기에 앉아 혼자 중얼거리다 피식 웃었다. 나이 먹으니 나도 말이 많아졌다. 듣는 사람도 없는데 혼자서 말을 하다니,, 친구의 수다에 신이 나서 맞장구를 쳤다. 남성 호르몬은 아직 나오냐? 새벽좆은 꼴려,, 그래, 참 열심히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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