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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오후가 끝날 무렵 - 강재남

어떤 오후가 끝날 무렵 - 강재남 유독 무덤가에서 누구에게 무례하다 누구에게 친절하다 그러므로 나는 계속 늙어야하고 태양은 죽지 않아야 한다 오후에 나는 늙었고 태양은 죽지 않았으므로 신경안정제 한 움큼 털어 넣는다 물푸레나무가 한 뼘 자란다 물푸레나무는 철학적이어서 어떤 물음과 대답이 공존한다 불규칙한 무늬를 입은 상냥한 그 여자, 입술이 붉다 입술에서 입술로 환승하는 나는 요망스런 계집, 아무도 죽지 않은 무덤에서 편지를 쓴다 마른 꽃편지를 받으면 반드시 죽은 이름을 불러야할 이유는 없다 상냥한 그 여자와 여자들 입술이 부풀고 부푼 입술에서 뒷담화가 핀다 아름다운 생장력을 가진 치명적인 꽃, 꽃잎을 뜯어 혀에 심는다 오후에 나는 늙었고 태양은 죽지 않았으므로 햇살 한 움큼 털어 넣는다 붉은 꽃술에 혓..

한줄 詩 2018.12.06

지민의 탄생 - 김종영

작년부터 읽어야지 했던 책이다.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새로 나온 책에 눈길이 가다 보면 목록에 있던 책들이 자꾸 뒤로 밀린다. 밀리다 보면 잊혀지고 그러다 영영 인연이 닿지 않은 책이 부지기수다. 이 책도 그럴 뻔했다. 책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인연이 닿아야 읽게 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어쨌든 한참 뒤로 밀린 목록에서 이 책을 발견한 것은 퍽이나 다행이다. 김종영 선생은 예전에 읽은 책 를 읽고 알았다. 많은 철밥통 교수들이 자리 보전에만 급급하고 학문 연구에 게으른데 이 사람은 예외다. 비교적 젊은 교수여서 깨어 있는 시각과 스스로 천민이라 생각하며 자각하는 지식인이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지식인이고 대학에 이런 선생이 많아야 한다. 학점 후하게 주고 취직 잘 되게 하는 학점 공장으로 전락한 작금의..

네줄 冊 2018.12.05

일인詩위 - 김경주, 제이크 레빈 외

제목도 내용도 아주 독특한 책이다. 서점 진열대에서 라는 제목이 눈에 띄었을 때부터 뭔가에 확 끌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이라는 낯선 문화 형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一人詩爲라니. 이 책은 시를 좋아하는 내게 새로운 방식의 시운동을 알려준 일인시위였다. 이 책은 네 명의 공동 작품인데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김경주 시인이다. 철학을 전공한 시인답게 아주 철학적인 시를 쓰는 그는 연극, 미술, 등 다양한 방면에 재능을 가진 시인이다. 진즉부터 포에트리 슬램에 관심이 있었고 이런 책도 내게 되었다고 한다. 시낭송도 아니고 시극도 아닌 빠른 템포의 가락에 얹힌 시가 랩이라는 장르에 섞였다고 할까. 우리에게는 없는 문화 형식이라 딱히 뭐라 정의를 내리지 못하겠다. 어차피 나는 이 책을 활자로 된..

네줄 冊 2018.12.03

그곳에 속하는 두 귀 - 한영수

그곳에 속하는 두 귀 - 한영수 여기쯤에서 한 장 기억이 되자 11월이 파종한 깊은 주름에 눈송이 모양의 얼룩과 또 발달하는 잔주름이 조합된 삶의 기술 지금을 다해 손을 흔든다 얼굴의 반원이 다른 세계로 돌아갈 때까지 흐르는 단풍잎 시간을 이별의 예의라 발음해도 될까 지난 이야기는 평범해지지 쉽게 그까짓 것이 되어버리지 모서리를 세우던 밤도 사방에 걸어둔 말줄임표도 걸었던 길만큼이나 긴 혼잣말도 비어가는 가지 끝 낮달의 하얀 무게 하얀 냄새 눈시울에 동쪽과 서쪽이 겹친다 햇살이 골고루 조율하는 그곳에 속하는 두 귀 바닥을 치는 소리 짧게, 들을 일만 남았다 *시집, 케냐의 장미, 서정시학 그는 발견되지 않았다 - 한영수 분명하게 그는 발견되었다 뉴타운 3구역이었다 텔레비젼 케이블에 목이 감긴 채 주머니엔..

한줄 詩 2018.12.03

가족의 힘 - 류근

가족의 힘 - 류근 애인에게 버림받고 돌아온 밤에 아내를 부등켜 안고 엉엉 운다 아내는 속 깊은 보호자답게 모든 걸 안다는 듯 등 두들기며 내 울음을 다 들어주고 세상에 좋은 여자가 얼마나 많은지 세월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따뜻한 위로를 잊지 않는다 나는 더 용기를 내서 울고 아내는 술상을 봐 주며 내게 응원의 술잔을 건넨다 이 모처럼 화목한 풍경에 잔뜩 고무된 어린 것들조차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노래와 율동을 아끼지 않고 나는 애인에게 버림 받은 것이 다시 서러워 밤 늦도록 울음에 겨워 술잔을 높이 드는 것이다 다시 새로운 연애에 대한 희망을 갖자고 술병을 세우며 굳게 다짐해보는 것이다 *시집, 상처적 체질, 문학과지성 사람의 나날 - 류근 우리끼리만 아는 하루를 남겨두는 것이었다 우..

한줄 詩 2018.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