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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치로의 입성을 꿈꾸며 - 김상철

평균치로의 입성을 꿈꾸며 - 김상철 정부는 인구 억제책으로 유전인자가 불량한 자의 대를 끊기로 결정하였다 표준미달의 사람들이 심한 반발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인권단체와 전국 대학에선 연일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국회의 표결을 앞두고는 있으나 이번 결정의 번복 가능성을 점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고 언론은 전한다 정부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하여 파격적인 대우를 제시했다 나는 색약과 수족이 짧다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조만간 정부가 지정하는 병원에서 생식기를 파괴하는 수술을 받아야 할 것이다 주류업계는 아비규환의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시집, 흙이 도톰한 마당에 대한 기억, 고두미 또 하나의 증거 - 김상철 남자는 돈을 벌기로 하고 여자는 살림을 하기로 하고 둘이는 둥지를 틀었습니다. 금실은 좋았는데요...

한줄 詩 2018.12.14

저승의 필요성 - 김상출

저승의 필요성 - 김상출 저승은 있어야 한다 나는 죽어 저승에 꼭 가야 한다 빌고 싶어도 빌 수 없게 먼저 세상을 떠버린 사람들에게 빌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나의 죄와 내가 미처 모르는 나의 죄 내가 아는 나의 선행과 내가 미처 몰랐던 선행도 저승에서 말끔하게 판정받고 싶다 저승은 꼭 있어야 한다 이승에서는 내게 힘이 없어 어쩌지 못하는 나쁜 놈들이 저지른 죄만큼 벌을 받아야 하는데 벌 줄 곳이 거기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알고 저지른 죄와 저질러 놓고도 모르는 죄 그 죄로 인해 울어야 했던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와 좌절과 아픔들이 그놈들의 가슴에 그대로 들이치는 꼴을 꼭 내 눈으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집, 부끄러운 밑천, 문예미학사 식탐 - 김상출 내 유년은 보릿가루 죽으로 살아냈다..

한줄 詩 2018.12.14

극장 - 손월언

극장 - 손월언 마르세유에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극장이 있다 나는 이 극장에서 여러 편의 영화를 보았는데 혁명과 회한과 탄식, 생의 장엄한 끝자락들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화가 끝난 뒤에 쓸쓸한 한 물체로 변해 있는 나를 보았다 극장은 날마다 새로운 필름을 돌렸고 할인 티켓을 구하려 애쓸 필요도 없이 무료이며 수많은 히트작을 상영했지만 단 한 번도 속편을 틀어준 적은 없다 스크린은 바람 속에 있고 객석은 몽테크리스토 백작 섬 너머로 수평선이 바라다보이는 산정에 있으며 자연의 소리 그대로를 전하는 음향은 완벽하다 중요한 점은 열정이 담겨 있지 않은 필름은 개봉하지 않는다는 것 주의할 점은 겨울철이면 비가 내려 극장 문을 자주 닫는다는 것 예고가 없다는 것 극장에 오는 사람들과 구름들과 갈매기들은 외..

한줄 詩 2018.12.14

Mi mou thimonis matia mou - George Dalaras

George Dalaras - Mi mou thimonis matia mou 처음 어느 카페에서 나오는 이 노래를 듣고 전율을 느꼈다. 누군지도 몰랐다. 궁금하면 못 지나가는 성격이라 직원에게 물었다. 바쁜 와중에도 잠시 기다리면 알려 주겠다고 했다. 이미 다른 곡이 나오고 있지만 그 곡의 잔상을 잊을 수 없다. 직원이 가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주고 간다. 고마움에 앞서 미안했다. 15년을 살았던 런던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어쨌든 이 사람의 음반을 오랜 기간 갖고 있으면서 틈틈이 들었다. 한 번 들으면 여러 번 듣게 되는 마력이 있다. 특히 부주키라는 그리스 악기에 빨려든다. 이런 노래를 호소력이 있다고 했던가. 조지 달라스는 영어로 부를 때고 그리스 말로는 요르고스 달라라스(Giorgos Dalaras..

두줄 音 2018.12.13

꿈 이야기 - 임동확

꿈 이야기 - 임동확 그건 마냥 호의적이지 않은 생을 로또복권처럼 한순간에 뒤바꾸지도, 혁명처럼 실현 불가능한 사태를 역전시키지도 않는 천덕꾸러기. 오히려 끝없는 비천과 기약 없는 약속과의 한 치 양보 없는 싸움. 붉은 악마들이 새벽까지 한국축구의 승리를 응원하고 돌아간 후에도 남아 빗물 새는 지붕, 단칸방에서 쫓겨나지 않는 것만이 전부인자들의 기도. 문득 마사지 클럽 보물섬과 대한성서공회가 사이좋게 입주해있는 건물 옥상, 날 새도록 켜져 있는 신촌 로터리 휴대폰 광고판처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지지하는 것과 원하는 것들 사이 입 벌린 맨홀처럼 어두운 단절. 그러나 가혹하게도 이뤄지지 않을 때만 더욱 가혹하게 달라붙는 마법의 힘. 느닷없이 찾아온 충만을 느끼는 순간 그 꼬리를 감추고 마는 연안의..

한줄 詩 2018.12.13

찔레꽃이 저문다 - 정우영

찔레꽃이 저문다 - 정우영 저 건너에서 한 사람 불러내라고 하면 누굴 꼽아야 할까. 어머니나 아버지? 아니면 할머니? 하지만 오늘밤 나는 불경스럽게도 저 곽산 떠도는 소월을 모셔와서는, 새로 나온 정미조의 개여울이나 실실, 함께 따라 부르고 싶다. 그런 다음에는 뭘 할 거냐고? 글쎄, 무슨 거창한 계획은 없다. 그냥 가만히 그이의 손바닥을 쓰다듬으며 그의 목숨에 찰랑거리는 물음들,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족하지 않을까. 그런 밤이다. 찔레꽃이 와락 찾아와서는 한참을 숨죽여 흐느끼다 돌아갔다. *시집, 활에 기대다, 반걸음 까막눈 - 정우영 마흔아홉에서 쉰으로 넘어가야 하는 곡절 앞에 너는 서 있다. 한끝은 끝이 아니면서도 다시 끝이다. 더 이상 읽을 수 있는 책력이 없다. 이 쓰디쓴 긴장 속에서 너는 곧 ..

한줄 詩 2018.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