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인간 형성 - 백무산

마루안 2020. 5. 15. 18:39



인간 형성 - 백무산



매번 다른 사람이 오는데 그 사람이 그 사람 같다

몸가짐이 거침없고 말이 시원시원하다

똥 푸러 오는 사람들 속이 훤히 다 보일 것 같다


종일 남의 집 똥구덩이에 고개를 박고

얼굴에 입술에 똥물 바르고 그 돈 벌어 밥 먹고

애들 학교 보내고 마누라 화장품도 사주고 조상 제사도 모시고

아무나 하는 일 아니다 속이 컴컴한 자들

근기 모자라는 자들은 근처에도 못 가는 일이다


꽃을 노래하고 별을 우러르고

영롱한 이슬을 글에 담는 사람들더러

영혼이 맑은 사람인 것 같아요 누군가 감동하자

그 영혼들이 우쭐대지만 속사정은 개뿔이다


속에 구정물이 가득해서 이슬을 찾고

당장 숨이 차고 혼미해서 꽃을 찾고

인간성이 시궁창이라서 향기를 찾고

영혼이 누더기라서 별로 기워야 했을 것

아니면 오염되기 쉬운 선천적 기형이라서

별과 이슬을 복용해야 하거나


인간이 제 손으로 똥 푸는 일이 없어지고

자기가 싸놓은 제 것이 아닌 양

혐오하고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고상한 습성을

동물과 유일하게 구별되는 습성을

우리는 인간성이라고 부른다



*시집,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 창비








히말라야에서 - 백무산



죄 없는 자들일수록 더 많이 참회하고

적게 먹는 자들이 더 많이 감사하고

타락하지 않는 자들이 더 많이 뉘우치고

힘들여 사는 자들일수록 고행의 순례길을 떠나고

적게 살생한 자들이 더 많이 속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그러한 감사와 참회가 낡아빠진 문화라는 사실 때문에

그리하여 내가 사는 곳에 감사와 참회 따위가

입에 오르는 일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오래전에 낡은 체제를 혁명하고

또 혁명에 혁명을 거듭했기 때문에

더 혁명할 것이 없을 즈음에

마침내 어떤 진리에 이르렀기 때문에


많이 먹고 많이 가질수록 죄가 줄어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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