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철학적 홍등가 - 신정민

마루안 2020. 5. 12. 18:58



철학적 홍등가 - 신정민



천변 길 확장하면서 어묵 공장 없어지자

뒷골목 색싯집들이 큰길에 드러났다


하얀에서 온 화냥

타지에서 온 환향

아무개의 첩 화랑


포주 겸 색시 이젠 제법 늙어

지나가는 사내 손님인지 아닌지 멀리서도 척 보면 알았다


목숨보다 눈부신 것 없다


죽도록 살아야 한다


아무 데서다 잘 크는 붓꽃같이

보살피지 않아 더 환한 제라늄같이


어떤 일을 이루고 나서 대책 없이 슬퍼질지라도

들어가 쉬고 싶은 쪽방 한 칸

궁금한 것도 아름다운 것도 없이 가슴은 뛰어


생각 밖에 서 있는 어묵 공장 다시 한 번 허물어 본다



*시집, 저녁은 안녕이란 인사를 하지 않는다, 파란








맨드라미 - 신정민



암탉 지키려다

개에게 물려 죽은 수탉

살집 좋은 암컷을 네 마리나 거느리고 있다


감추지 못한 화관

숨어 있어 더 잘 보인다


자리 옮겨 그곳,

그것,이 가진 시간만큼 머물다 돌아오라


시들지도 않고

다시 피지도 않는 한해살이풀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다른 생으로 가기 전의 생끼리

말이나 트자고 수작 걸어 본다






*시인의 말


완행버스를 탔다 목적지까지 가는 몇 개의 정류장에서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버스가 멈출 때마다 창문에 흰 손수건을 기대어 놓고 오래도록 졸고 있는 소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졸음은 소년을 깨울 수 있을까


사람만 한 풍경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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