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요, 분홍 - 정진혁 분홍이라는 말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분홍으로 산다는 건 달콤하게 익어 가는 것 내 눈과 내 낱말들이 누군가의 한 잎 속에서 산다는 것 당신의 한 잎은 온통 숨결이어서 마음을 실어 나르는 수레여서 분홍 잎맥을 따라 스며든 시간들 사이여서 날마다 분홍 안에서 익숙해지는 몸짓 분홍을 입어요, 분홍을 먹어요, 분홍을 춤춰요 분홍은 나를 얼마나 멀리 밀고 가는지 있잖아요, 그거 알아요? 청평이라든지 덕적도 여수 부산 통영 무의도 같은 지명을 여기선 다들 분홍이라 불러요 한여름 배롱나무 산딸기 복숭아 떨어지는 꽃잎도 나는 분홍이라 불러요 분홍에서만 나를 느낄 수 있으니 뒤집혀도 분홍 분홍과 분홍 사이에서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둥긂이 되었지요 있잖아요 분홍 한 장을 넘기며 가장 낮은 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