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줄 冊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 고영

마루안 2020. 8. 30. 18:39

 

 

 

이 책을 읽고서 카스테라 빵을 사 먹었다. 잊고 있던 빵인데 실로 오랜만이다. 어릴 적 워낙 찢어지게 가난했기에 군것질을 모르고 살았다. 잘 사는 집 친구가 붕어빵 꼬리를 잘라 주면 강아지마냥 꼬리를 흔들며 넙죽 받아 먹던 아이였다. 

 

그런 일은 없었지만 행여 장난으로 침을 묻혀 주었어도 받아 먹었을 것이다. 신문 배달, 음식점 알바 등, 일찍부터 스스로 용돈을 해결하며 학교를 다녔다. 그때 가끔 사 먹던 간식이 카스테라였다. 빵 밑에 깔린 종이에 묻은 카스테라를 이빨로 긁어 먹었다.

 

태생이 천해서일까. 중년이 된 지금도 식탐이 있다. 막 스무 살 넘긴 무렵, 알바로 노가다를 따라다닌 적이 있다. 식당 알바보다 훨씬 힘들었으나 돈을 더 많이 받는 이유다. 도배를 하는 팀을 따라 다녔는데 경력은 일천하나 가르쳐준 대로 눈썰미 있게 했던 탓인지 짤리지 않고 다녔다.

 

일하면서 공부하는 게 달리 보였던지 나를 잘 챙겨주던 책임자가 있었다. 새참으로 우유와 빵이 나왔는데 단팥빵, 곰보빵, 크림빵, 카스테라 등 여러 종류의 빵이 있었다. 빵이 사람 수보다 여유가 있어서 나는 한 봉지를 더 먹을 때가 많았다.

 

비록 공장에서 만든 싸구려 빵이지만 땀에 절은 얼굴을 닦으며 먹던 그 빵 맛을 어찌 잊을까. 그때는 부드러운 카스테라보다 씹는 맛이 있는 단팥빵이나 곰보빵이 더 좋았다. 뜬금없이 빵 얘기를 먼저 했다. 이 책이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탓이다.

 

조금 시들해지긴 했으나 공중파에서 음식 프로가 시청율을 끌어 올리고 세프가 연예인 대접을 받는다. 유튜브에서 먹방 열풍이 여전하고 그 유행의 틈새를 음식 책들도 끼어 들었다. 딱히 읽을 만한 책이 없었는데 이 책이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저자 고영은 음식문헌 연구자다. 고전문학을 전공했으니 옛 문헌에서 음식이 나오는 구절을 예리하게 잡아낸다. 글 솜씨 또한 대단해서 고대와 현대를 오가면서 음식에 관한 맛깔스런 이야기를 빼어난 문장에 담아냈다. 음식 이야기를 아주 맛있게 쓸 줄 아는 작가다.

 

요즘 이곳저곳에 갖다 붙이는 인문학이 이 책에는 한 번도 언급이 되지 않지만 음식 인문학의 정수라 해도 되겠다. <예전의 밥 짓기, 상 보기란 오로지 사람의 노동력만으로 연료를 획득하고 물을 긷는 데서 시작했다. 그래서 뭐든 먹을 게 됐으면 그것만으로 우선 장하고 대단했다>.

 

버려지는 음식으로 환경이 오염되는 시대에 이 얼마나 거룩한 풍경인가. 날도 더운데 간단하게 국수나 말아먹자는 말이 예전에는 전혀 통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대목에 탄복했다. 보지는 않았지만 당시의 국수 한 가락은 길고도 고단한 노동의 댓가였다.

 

오래 기억하기 위해 다소 길지만 그 국수 구절을 옮긴다. <먼저 타작해 얻은 밀낟알을 일일이 까부르고 이를 물에 씻어 멍석에 펴 말린다. 그러고는 깨끗이 씻은 발로 마른 밀낟알을 꼭꼭 밟는다. 그래야 그 다음 맷돌질이 쉬워진다. 6월 말에 거둔 밀로 굳이 밀가루를 내는 때는 언제인가. 쌀도 다 먹고, 그래도 밥이 되어 주던 좁쌀마저 다 먹은 한여름이다.

 

이때 밀가루라도 내야 칼국수라도 수제비라도 해 먹고 여름을 날 수 있다. 밀낟알 밟기는 한여름 해 있을 때, 해 받아가며 한다. 이는 나이 어린 여성의 몫이었다. 석양이 되어서야 밟은 낟알을 거두면, 다시 그 집의 나이 좀 든 여성, 주부가 밤새 맷돌로 타 밀가루를 받았다.

 

탈각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간신히 씻어 말린 밀낟알에서 받은 밀가루가 순백색일 수가 없다. 여기서 더 품질 좋은, 더 깨끗하고 하얀 밀가루를 받으려면? 옛 문헌에 따르면 거친 밀가루를 눈이 고운 깁에 치고 또 치는 수고를 해야 했다>. 몇 백년 전 얘기가 아니라 불과 70, 80년 전 일이다.

 

국수 한 그릇을 먹기 위한 이런 고단한 과정을 몇 명이나 이해할까. 스마트폰 몇 번 누르면 득달같이 배달 되는 요즘 같으면 이러느니 차라리 안 먹고 말겠다고 할 것이다. 밥 없으면 빵을 먹고 빵 없으면 라면을 먹는 요즘과 달리 대체 식품이 없던 시절은 이 과정 아니면 굶거나 죽을 먹어야 했다.

 

이 외에도 <빵과 과자는 다름니다>. <한국 빵 문화사의 원형> 등은 많은 공부가 되었다. <소금 한 톨에 깃든 사연>에서는 한중일에 얽힌 근대사 공부를 제대로 했다. 어느 한 부분 버릴 데가 없을 정도로 영양가 넘치는 좋은 책이다. 읽기를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