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신발 - 심종록 신발을 잃어버렸다 백감독도 만나고 인디안 수니도 만나고 반가운 사람 손도 잡아 흔들고 초면인 사람과 통성명도 하고 삶과 죽음이 뒤섞인 자리 밤늦은 시간이지만 돌아가야 하는 처지라 여기저기서 권하는 술잔 마다하며 입술이나 축이다가 자정 근처에서 일어섰는데 신발이 없다 다리 아래 좁은 구멍에서 빠져나와 첫 발 떼기 시작할 때부터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던 지금은 몇 번째인지 톺아볼 순 없지만 여기까지 나와 동행한 신발이여 나의 분신이여 사제를 함께 하자던 도반이여 때로 똥 밟은 자존심의 더러운 위안이여 네가 감쪽같이 사라지다니 어느 쓸쓸한 날 세상과 하직하기 위해 백척간두에 올라서는 사람도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은 후 한쪽 발부터 내민다는데 깊은 물속으로 몸을 던지는 사람도 열에 아홉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