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속의 슬픔 - 이봉환
햇살 속에는
제 몸빛과는 다른 것들이 숨어서 있지
그것들 투명한 파장으로 둔갑하여서
우리 눈에는 그저 안 보이기 십상
깊어진 가을 쓸쓸함이 한이 없거나
맑아지고 맑아진 몸 빛깔 더는 견딜 수 없을 때
깜빡 그 존재를 드러내고는 하는 모양
그러고도 그 느낌이란
몇 달씩 혹은 몇 년씩 촉수를 바들바들 떨어야
어신처럼 톡, 톡, 그렇게 전해온다는데
때마침 '글루미 선데이'를 듣는다 지금 나
그걸 타고 당신에게로 갈까 해의 살을 타고
몰래몰래 투명함으로 그대에게 퍼져갈까
이 울림이 가을을 견디는 나의 힘이다
*시집/ 응강/ 반걸음
잠자리 생각 - 이봉환
나는 저들이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여전히 모르는 것처럼, 그래서
저들도 분명 제 안에 어떤 영혼을 가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홀연히 나타난 그들이 단풍나무 아래를 어슬렁이다가
무언가를 향해 또 멈칫거리다가 한참을 생각이 깊어지면
고추잠자리도 단풍잎도 금방은 더 붉어질 것만 같은데,
작은 바람에도 손바닥을 까닥까닥 까부는 나뭇잎들의 손짓에 갔다가 되돌아오고
다시 떠날 일이 생각난 듯 머뭇거리는 잠자리처럼
나도 지난날의 언제쯤엔가는 아버지 무덤가를 서성이다가도 왔고
사랑이 그리웠으나 그 집
창문 밖을 잠자리와 같이 무춤댈 뿐이어서
우리는 늘 저마다의 일들을 가만히
생각하고 주저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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