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詩

우리의 날갯짓은 정적으로 흔들린다 - 권지영

마루안 2020. 10. 20. 22:07

 

 

우리의 날갯짓은 정적으로 흔들린다 - 권지영


눈물 없이 우는 새 한 마리
하늘을 가르며 날아간다
나는 눈물 없이 우는 법은 익혔으나
하늘을 나는 능력은 아직 없기에
언젠가 새들처럼 하늘을 날게 되면
밀린 대답들들 시원하게 내지를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간다
마음을 다쳐 말을 잊은 이
시간의 덩어리를 타고 부유한다

새는 날개의 균형과 공기 저항으로 하늘을 난다
바람을 가를 때는 정적을 깨며
산비탈을 가파르게 오르는 기분이다
누군가를 부르며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새 한 마리,
모든 공기를 억누르며 가만히 다정하다

눈물 없이 우는 법을 그때 배웠지
울기 위해서도 균형이 필요해
삶의 중심에서 나가떨어지지 않게 평형감각을 길러야 해
서투른 나는 이따금 흔들렸지
바람이 거칠게 뺨을 때릴 때에 한없이 울고만 싶었지
소리 내지 않고 우는 법을 익혔지만
빗속에서 이별을 맞이할 때는 소리가 소리를 먹었어


*시집/ 아름다워서 슬픈 말들/ 달아실출판사


 

 



별의 소식 - 권지영


절망은 최고를 기다린다
최고의 순간에 파멸을 부르는 주술사
기다렸다는 듯 터진다

오해는 이해를 이해하지 않고
이해는 오해를 바라본다
입에서 마른 침묵이 흘러내린다
오해는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

유명한 사람들은 불행을 등지고
스스로 돌아보는 법은 잊는다

걸려 있던 유리잔을 옮기려는 순간
손에서 미끄러지고
쨍그랑,
뉴스가 떠다닌다

모니터 안 세상에선 심한 가뭄으로
단수가 이어진다
유명했던 그는 세상과 단절된다
어떤 날은 별들이 모두 웃고 있지만
어떤 날은 별들이 슬퍼 보이는 이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읽기 위해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별이 되는 소식을 접한다

 

 


# 권지영 시인은 울산 출생으로 경희대에서 국제한국언어문화과를 공부했다. 시집으로 <붉은 재즈가 퍼지는 시간>, <누군가 두고 간 슬픔>, <아름다워서 슬픈 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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